여차여차
곽호 썰, 소설 올리는 블로그 @tarack_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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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재 완 결 단 편 기 타 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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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기절했다 깨어났다. 정신이 들어 슬그머니 한쪽 눈을 뜬 건화는 바로 보이는 것이 후거의 얼굴이라 다시 도로 눈을 감는다. 아 젠장. 머리에 축구공 맞고 기절한 것 보다, 그 꼴을 후거에게 보인 것이 더 창피하다.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쪽팔리는데 그 잠깐 눈 뜬 순간을 어떻게 본건지 냉랭한 후거의 목소리가 닿아서 어색한 얼굴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방금 형 움직인 거 다 봤어.”

“...수업시간 아냐?”

“오늘 양호선생님 없으셔서 내가 형 돌본다고 했어.”

“돌보긴 뭘 돌봐 그냥 공에 맞고...”

“뇌진탕 올 수도 있는 거잖아.”

“네가 뇌진탕인지 아닌지 진찰 할 수나 있고?”

“완전 멀쩡하네.”


건화가 한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술을 삐죽댄 후거가 대뜸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아차 싶은 건화가 부리나케 후거의 손목을 붙잡는다. 왜. 나 아직도 좀 아픈 거 같아. 머리에 봐줘. 멍든 거 아냐?


“멍든 거 아니고 혹 난 거야.”

“아... 어떤 미친놈이 내 머리에다가 공을 날린 거야?”

“형은 왜 축구하는데 혼자 그렇게 멍청하게 서 있었어?”

“멍청하긴. 너 보다가 그런 건데.”

“나보느라 공에 맞았다고?”

“아니, 니가 나무에 부딪치려고 하길래..”


나름대로 후거를 생각해서 그런 건데 마무리가 이러니 아무리 합당한 이유를 대봐도 쪽팔리기 짝에 없다. 머리가 아픈 것보다 그냥 창피한 게 더 커서 이불 같지도 않은 버스럭대는 이불을 걷고 일어서자 반대로 후거는 의자에 앉는다. 그리곤 건화의 어깨를 붙잡아 고정시키곤 움직이지 말라 덧붙였다. 교실에 가자고 하려던 건화의 입이 얌전하게 다물고, 후거의 한숨소리에 마른침을 삼켰다.


“머리에 혹 진짜 크게 났어. 형 당분간 모자 쓰면 안 되겠다.”

“멍은 없어?”

“머리에 멍 난걸 어떻게 확인해. 잠깐만...”


우리 후거 빨리 교실에 들어가서 공부해야하는데. 후거가 공부한다고 할 땐 건화도 안 건드린다. 후거의 집에 말없이 놀러갔을 때, 후거는 내일모레 중간고사가 있으니 본인은 공부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고 건화는 공부하는 후거 옆에 앉아 5시간을 후거의 얼굴만 보며 시간을 보냈다. 오는 전화도 다 끊고, 문자 메시지에 답장도 안 하고, 물만 꼴깍꼴깍 삼키며 그 다섯 시간을 흘려보냈는데 그러고 집에 가기 위해 나오는 순간 머리에서 떠오르는 건 이따금씩 꾹 말리는 후거의 입술 밖에 없더라.


“아, 아..!”

“아파? 미안해..”


후거의 손이 제 머리에 닿은 게 좋다. 저가 가끔 후거의 머리를 쓰다듬긴 해도 그 반대의 경우는 잘 없었으니까. 쪽팔린 짓 하고 깨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은은하게 닿는 후거의 향에도 감정이 시큰하다. 일부러 다른 쪽으로 눈만 데굴데굴 굴러 먼 산을 보고 있을 때, 한참 건화의 머리를 살살 만져보던 후거의 손가락이 혹에 가볍게 닿자마자 누가 바늘로 쑤셔대는 것 같은 통증에 마음과 다르게 머리를 빼고 “으윽.” 신음했다. 후거는 큰일이라도 저지른 듯 후다닥 손을 빼며 안절부절 했다. 형, 괜찮아? 많, 많이 아파? 말까지 더듬으면서. 좀 전까지 형의 머리에 닿았던 손을 꾹 쥐며 눈만 크게 올려 뜨곤 웅얼거렸다. “형.. 형...?” 웅크린 건화가 말이 없으니 더 걱정된다. 곱게 모아져있던 손이 슬그머니 내려와 건화의 팔에 닿았을 때, 고개를 든 건화는 앓던 표정은 어디가고 없고 입 꼬리를 당겨 씩 웃으며 후거의 손을 붙잡았다. 사실 고개 들던 순간 올라가는 입 꼬리에서부터 예감은 했다만.


“걱정 돼?”

“아.. 장난하나...”

“왜 갑자기 정색해.”


진짜 아픈 줄 알고 간 졸렸는데 장난 쳐? 욱하는 마음에 쏟아지는 후거의 투덜거림을 듣고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대로 후거가 학교 마칠 때 까지 내내 같이 있어주면 더 없이 좋을 텐데. 그건 안 될 테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반까지 데려다주겠다 약속한다. 후거가 거절했지만 그래도 데려다주기로 했다. 이런 결말이면 한 번 정도는 더 공에 맞아도 괜찮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생각보다 아프니까 고려만 해봐야겠어. 아까 엄살 아니고 진짜 아팠던 거거든.



***



“대학은 결국엔 안 가겠다고?”

“네.”


고등학교에 들어와 세 번째 입시상담. 세 번 다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대학엔 갈 생각이 없다고.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들으실 때 마다 처음 듣는다는 것처럼 반응을 하시는 터라 이 모든 과정이 너무 익숙하다. 건화의 생활기록부를 넘기며 턱을 쓰다듬는 것, 부모님의 휴대폰 번호를 보며 망설이는 것. 좁은 상담실에서 유일하게 가슴이 트이는 것은 커다란 창가 너머로 가까이 보이는 1학년 건물이었다. 이곳에선 후거가 있는 반이 정면으로 보인다. 지금은 자리가 바뀌어서 안보이지만, 새 학기 초기에는 후거가 창가자리에 앉아 있어서 상담 받으며 후거가 있을 만한 부분만 쳐다봤었다. 여기서 본다한들 까만머리에 하얀 뺨 밖에 더 안 보이긴 하지만. 그냥 그 곳에 후거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금은... 지금은 내가 후거의 얼굴을 보기라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대학 안 가고, 바로 취업하려면 어디 쪽으로 가려고?”

“...거기까진 생각을 안 해 봤어요.”

“무턱대고 취업해야지. 할 게 아니라 계획을 세워야지.”

“....”


후거의 생각에 잠겨있던 머리는 다시금 현실로 돌아온다. 책망하는 목소리에 긴 속눈썹이 두 눈을 가렸다. 다시 뜨여진 눈은 창가에서 떨어진다.


“왜 취업하려고?”


역시나 말했던 건데. 선생님은 기억을 못하시나. 매번 똑같은 질문. 똑같은 대답.


“빨리 돈 벌어서 독립하려고요.”

“독립?”

“부모님 지원 안 받으려고요.”


덤덤하게 나오는 말에 생활기록부를 넘기던 선생님의 손길이 멈춘다. 뒤로 넘겨진 생활기록부에는 건화의 가족기록이 남겨져있었다. 아버지. 공무원. 어머니. 사업가. 현재는 이혼하여 건화 혼자 생활 중.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혼자 살고 있긴 하지만, 건화는 비교적 부유하게 크고 있는 편이었다. 혼자 살고 있는 집도 혼자 살기엔 과하게 큰 편이고 매달 들어오는 용돈도 생활비로 넘친다. 건화야 돈 쓰는 데에 흥미가 없다지만, 이따금씩 고가의 운동화와 스포츠 물품을 사는 데에도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집이 좋고, 용돈이 많다 한들 그게 온전히 행복한 삶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 알았다. 그래도 아직 원서 내려면 한, 두 달 더 있어야 하니까 좀 더 고민해보도록 해.”

“....”


대답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정말 나를 위해 조언하는 것 보다는 대학 입학률을 높이기 위해 말씀하시는 거라 느껴졌다. 건화는 원래 그런 성격이었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조심스러우며, 본인 아닌 남을 믿지 못한다. 그건 가족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아빠. 엄마. 한 번도 건화에게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한 사람들이다.

가볍게 고개만 숙인 건화는 그대로 상담실을 빠져나간다. 건화가 나가고 완전히 문이 닫힌 후에야 담임은 셔츠 주머니에 넣어뒀던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으며 한숨을 뱉었다. 고작해야 스물도 안 된 제자 놈인데 단 둘이서 있으면 긴장이 풀리질 않았다.




상담실을 나가고 교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청리와 마주쳤다. 잠깐 멈춰 선 건화는 인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고 있을 틈에 청리가 먼저 건화의 어깨 너머로 스쳐 지나간다. 완전히 무시당했으나 별로 감정이 상한다거나 미안한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그냥 아, 앞으론 봐도 인사 안 해도 되는 거구나. 하나 고민하고 있던 것을 덜어내 오히려 후련하기까지 하지. 


별 생각 없이 지나치다 목소리 하나가 그의 귓가에 닿았다. 바로 걷던 걸음을 멈춰 선다. 교무실. 교무실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건화의 발목을 붙잡아 쥐었다. 가만히 몸을 돌려 창문 안을 본다. 미술선생님과 대화 중인 후거가 있었다. 건화는 느리게 눈을 깜빡인다. 후거를 못 본지 일주일이 지났다. 얼굴이 보고 싶어 저도 모르게 1학년 건물 앞을 지나쳐갔지만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멍하니 창문을 바라본다. 후거는 심부름이라도 하고 있는지 한데 모은 스케치북을 미술선생님께 전하고 있었다. “네. 네. 선생님, 그러면 애들... 다음... ..일까지............ 네.” 목소리는 드문드문 들린다. 후거의 목소리가 창문의 엷은 틈 사이로 빠져나와 그에게 닿을 때 까지. 무기력하던 몸에 활기가 도는 듯하다. 더 가까이서 듣고 싶었다. 남에게 말을 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그에게 거는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형. 보고 싶었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건화는 반사적으로 창문에서 떨어진다. 후거가 고개를 돌리는 것 같아 숨을 들이키며 보폭을 넓게 걸어 계단으로 도망쳤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주저앉아 다닥다닥 붙어있는 주택가를 보며 뺨을 쓸었다. 심장이 쿵쾅댄다. 복도에서 애들이 떠드는 소리보다 제 심장소리가 더 커서 시끄러워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슴을 주먹으로 쿵쿵 치던 건화는 교무실 문이 열리고 후거의 인사소리가 들려 몸을 굳혔다. 순간 위쪽으로 올라올까봐 놀라 일어섰으나 후거는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하긴. 1학년 건물로 가려면 1층으로 가야하는데 굳이 올라 올 리가 없다.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 따라 아래로 내려갔으나 그새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코빼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내가 뭐하는 짓인지.

눈만 다르륵 굴리며 우울한 숨을 뱉는다.



***



아무도 없는 집이 익숙해질 때 까지 건화는 빈 집에서 수도 없이 떨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끝마치고 돌아온 첫 날. 내심 함께 해주실 거라 기대했던 부모님은 건화의 기대를 배반하고 그를 또 홀로 내버려뒀다. 차가운 집 안에 들어가 난방 기구를 틀고 가방을 내려놓는데 숨이 막혀 비명을 지를 수조차 없었다. 어두컴컴한 집안 꼴도 싫다. 홀로 남아있다는 현실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집 안에 들어간 것이 부질없게 가방을 버려두고 정원으로 빠져나왔다. 곧 봄이지만 아직 날은 쌀쌀하다. 겨울의 마지막 추위인지, 건화를 더 괴롭게 하려는 계절의 심산인지 늦겨울 바람이 뺨을 따갑게 스치고 지나간다. 그 추위 속에 버려진 건화는 홀로 벤치 위에서 상실감에 빠진다.

전에는 할머니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 오롯이 혼자라는 그 현실이 목을 죄여 숨조차 쉴 수가 없다. 


할머니 장례식에서 부모님을 몇 달 만에 뵈었다. 상주이신 아버지는 건화에게 몇 마디하고는 바쁘셔서 이야기를 나눠 볼 시간도 몇 없었다. 삼일간 장례식장을 지키며 아버지와 나눈 이야기라고는 네가 고생이 많았다. 힘들었겠다. 형식적인 위로들 뿐. 건화가 정말로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는데.


돌아가신 할머니도 보고 싶고, 어째서 자신은 남들과 다르게 늘 외로워야하는지 의뭉스럽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내가 무슨 그런 큰 죄를 지었을까.

눈물을 참아내려 쉴 새 없이 깜빡이는 순간, 누군가 대문을 툭툭 두드렸다. 허울뿐인 대문. 곧 바로 낭랑한 후거의 목소리가 들려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혹여나 그가 모르는 새 눈물이 흘렀을까 손등으로 벅벅 닦으며 귀를 기울인다.


“형! 나 오늘 형네 집에서 자고 가도 돼?”

“어어?”

“어! 형 거기 있었어?”


일단은 대문 안으로 소리쳤지만 건화가 바로 대답할 줄은 몰랐는지 먼저 물은 후거가 놀라 되묻는다. 눈가가 축축하지 않은 걸 확인 한 후 대문을 열어주자마자 토끼처럼 쫑긋 솟은 귀로 주변을 두리번대더니 커다란 배낭을 맨 채로 마당 안으로 들어왔다. 후거는 과장되는 표정으로 불만을 터뜨린다.


“아빠랑 싸웠어. 일주일간 집에 안 들어갈 거야.”


정말 일주일은 있을 생각인지, 품에는 제 몫의 베개까지 꼭 들고 있다. 동그란 땡땡이 무늬의 커버까지. 배낭 터질 것 같은데 저기 안에 이불도 들어있는 게 아닐까. 그 생각에 배낭을 쿡쿡 찔러보다 후거는 성이 난 고양이처럼 앙칼지게 그 손을 치우려고 하다가도 문득 멈춰 서서는 눈만 끔뻑대며 한 발짝 멀어졌다. 그리고는 건화의 손을 두 손으로 붙잡아 조물조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손이 왜 이렇게 차가워?”

“밖에 있어서.”

“맞다. 추운데 왜 밖에 있었어?”

“..그냥.. 진짜 아버지랑 싸워서 온 거 맞아?”

“맞아. 내가 뭐 하러 형한테 거짓말을 해.”


거짓말 아니라고 하는데 눈은 왜 피하는데.

손을 주물러주던 것도 멈추고 고개를 획 돌린다. 빨리 문 열어줘. 추워. 

베개는 한 아름 끌어안고 춥다고 하더니 건화보다 더 빨리 현관문 앞으로 걸어가 발을 동동 구른다. 빨리. 빨리 열어줘. 그러니 도저히 열지 않을 수가 없다. 후거가 아버지와 싸웠다는 말이 걸리지만, 그 걸리는 마음을 품고 열쇠를 열어 문을 열어주지만 실은 후거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도 건화가 더 잘 안다. 혼자서 외로울까봐, 힘들까봐 같이 있어주러 온 거겠지.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싸웠을 수도 있으니 아주 거짓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익숙하게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후거의 뒷모습을 보며 느리게 눈을 찡그렸다. 울음이 나온다면 지금일 것 같지만, 아직은 더 참을 수 있다.


“방 치워 줄게.”

“됐어. 형 방에서 잘래.”


후거가 지낸다면 어디에 있어야하지. 할머니 방은 차마 건드리지 못하겠고 건화의 옆방을 치워야할까 두리번댔으나 후거는 고개를 젓더니 건화의 방문에 똑똑- 노크한다. 나 여기서 잘래. 그래도 돼?


이미 먼저 그러겠다고 선포했으면서. 한 바퀴 크게 눈을 굴린 건화는 후거에게 비켜 달라 하곤 조심스레 제 방 문을 열었다. 아주 조금만. 두 눈이 들어갈 정도로만. 방 꼴이 어떨지 기억이 안 나서. 슬그머니 열었는데 뒤에 선 후거가 까치발을 들며 방 안을 본다. 왜. 뭐. 왜. 안에 야한 거 있지?


“야한 건 무슨.. 더러울까봐 그렇지.”

“곽건화 방 안 치우는 거 한 두 번 보나 뭐. 어차피 아줌마가 다 치워주시잖아.”

“그래도 잠깐만...”

“추워어어! 이불!”

“알았어. 좀 기다려봐.”


야한 건 이미 책상 안 서랍에 깊이 넣어 와서 안 들킬 자신 있고... 내가 뭘 숨기거나 해야 할 건 없던가. 찬찬히 돌이켜보지만 굳이 떠오르는 건 없다. 괜찮겠지. 그리고 후거가 뒤에서 재촉하는 바람에 시간을 더 끌 수도 없다. 결국 문을 열어 개방해줬고, 후거가 신나게 짐을 풀 동안 건화는 여분의 이불을 가져왔다. 이불장에 몇 달 있었던 거니 혹시나 퀘퀘한 냄새라도 날까봐 걱정돼 맡아보고,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뭘 해야하나 한참을 서성였다.


“이불 들고 운동해? 빨리 줘.”

“잠깐만...”

“뭘 자꾸 잠깐만이야.”


가방에서 짐을 꺼내면서도 힐끗힐끗 건화를 올려봤는데, 10분 넘게 이불을 들고 거실을 왔다갔다 하는 걸 보니 인내심의 한계가 온다. 무릎으로 서서 건화에게서 이불을 빼앗아 당기고 두꺼운 요를 바닥에 펴려고 하자 건화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내가 할게. 내가.


“나도 이불 펼 수 있어.”

“알아. 내가 할게.”

“그래. 형이 해.”


하여튼 고작 2년 일찍 태어났다고 자기가 다 잘하는 줄 알아. 미련 없이 이불을 건네준 후거는 그대로 침대 위로 올라가 데구르르 구른다. 구르다가 도중에 멈췄다.


“형도 침대 큰 걸로 바꾸자.”

“왜.”

“킹 사이즈로 바꾸자. 그럼 둘이서 자도 되잖아.”

“....안 바꿔.”

“바꾸지 마, 그럼.”


이번에도 간단하게 해결했다. 싫다니까 안 바꾸면 되잖아. 낭창하게 대답하곤 침대 위의 이불안으로 몸을 쏙 구겨 넣는다. 발 시려. 겨울만 되면 손발이 시려서 죽겠어. 


“그냥 내가 밑에서 잘게.”

“왜. 형이 침대에서 자.”

“너 감기 걸리면 골치 아파.”

“누군 감기 안 걸리는 척이야. 알았어.”


오늘따라 후거가 말을 잘 듣는다. 원래라면 자기가 아래에서 자겠다며 부득불 우겼을 텐데. 거기다 곧바로 얌전히 침대 위에 곱게 눕는 걸 보면 더더욱. 그래도 아무 말 않고, 책상 위 스탠드를 켜고 방의 불을 끈다. 나 씻고 올게. 알겠다고 대꾸하는 후거를 두고 욕실에 간 건화는 후거가 있는 방문을 닫고 나서는 순간 목이 졸려오는 상실감에 다시금 숨을 멈췄다. 1분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억지로 숨을 몰아쉬고, 씻는 둥 마는 둥 정신없이 빠르게 씻고 방으로 되돌아온다. 어깨와 목덜미 위로 찬물이 뚝뚝 떨어졌다. 

머리 끝 까지 이불을 덮고 있던 후거는 문이 열리자 빼꼼 고개를 빼내어본다. 이불 속에서 좀 숨이 막히더니 얼굴이 빨갛게 타올랐는데, 더워 죽을 것 같다며 짜증내려던 것이 마찬가지로 목구멍 안으로 흩어졌다. 수건에 얼굴이 가려진 건화가 아무 말 없이 앉아 머리만 말리고 있으니 내심 불안해져 침대에서 일어선다.


“형.”

“어?”

“어.. 아니. 내가 머리 말려줄까?”

“아니 괜찮아. 잠이나 자.”

“아까 커피 마셔서 잠이 안 오는데. 그리고 아직 10시 안 됐잖아.”

“그러게 왜 저녁에 커피를 마셔?”

“엄마가 마셔서... 나 비디오 가져왔는데 이따 비디오 볼래?”


아니면.. 아. 집에서 게임기도 가져올 걸 그랬다. 새로 산 게임 있는데. 난 게임 못 하는데. 그러면.. 내일 아침에 형 농구하러 안 가? 

후거는 쉬지 않고 그에게 무언가를 제안한다. 건화는 미적지근하게 대답했다. 음. 글쎄. 

머리가 짧으니까 대충 수건으로 몇 번 문지르는 것만으로도 금방 물기가 줄어든다. 대충 더 이상 떨어지는 물이 없을 때 수건을 내리고 건화는 숙인 고개를 들지 않았다. 옆에 앉은 후거의 엉덩이가 들썩인다. 가방에 넣은 비디오를 지금 꺼내야하는 걸까. 온갖 생각이 다 든다. 건화도 그랬다.


“형..”

“응.”

“내가.. 내가 괜히 온 건가?”

“아니야.”

“형이 혼자 있고 싶으면..”

“아니야.”


두 번째로 아니라고 대답했을 때는 차마 울먹이는 목소리를 감추는 게 힘들었다. 축축한 수건을 꽉 쥔다. 할머니의 빈자리가 느껴져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건화는 그것조차 할 수 없었다.


“혼자 있기 싫어.”


할머니를 보내드릴 때부터 가졌던 마음.

부모님을 보자 그 감정은 더더욱 커졌다. 혼자 있고 싶지 않다. 넓고 텅 빈 집 안에 혼자서 지내기 싫었다. 어른들은 건화에게 모두 ‘다 컸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게 아니었다. 건화는 아직도 십대고, 청소년이고, 미성숙하다. 한조각의 애정도 없이 어린애에게 ‘다 컸다.’고 말하는 어른은, 단순히 그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것뿐이었다. 어른들의 이기심. 그 정도면 너는 다 컸으니까 네 앞가림은 네가 알아서 하라는 잘못된 생각.


아빠와 엄마에게, 더 이상 혼자 살고 싶지 않다고 말 하고 싶었지만, 너도 이제 곧 성인이니 혼자 지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며 말하는 아빠 앞에서 차마 그러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건화에게 부모님이란 남보다 더 멀고 어려운 상대였다.


나도 어딘가 기대고 싶다. 기대어 울 수 있고, 안주할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없었다. 건화는 아주 어릴 적부터 ‘다 큰 어른’이었고, 다 큰 어른에겐 기대어 있을 만한 나무가 필요 없어야 했다.


어쩔 줄 몰라 한참을 머뭇대던 후거의 손이 그의 등에 닿는다. 어색하게 등을 쓸어내렸다. 해줄 말을 모르겠다. 건화의 할머니는 후거도 자주 뵈어 익숙한 분이다. 후거가 알기론, 유일하게 건화를 아껴주는 가족이었다. 그런 분이 돌아가셨으니 형의 마음이 어떨지는 상상이 가면서도, 감히 가늠이 되지 않는다. 다시는 할머니를 보지 못한다는 생각과 울고 있는 형의 모습에 후거마저 울컥 눈가가 젖어들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뺨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손등으로 대충 눈물을 닦아내고 고개를 든 건화는 어느새 울고 있는 후거를 보곤 당황해 헛숨을 들이켰다. 


“왜 울어..”

“그냥.. 형이 우니까.”


저가 울어서 따라 운다니. 엄마 우는 모습 보고 따라 우는 유치원생도 아니고. 꾹 다물렸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긴 속눈썹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 건화는 여전히 울먹이는 후거를 끌어안아 당긴다. 


사랑 받는다는 기분이라는 걸 몰랐는데, 후거와 만난 이후로는 알 것 같았다. 막연하게 그런 것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 형체가 되어 내게 다가왔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것이 사랑이구나. 반대로 나를 위해서라도 네가 울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게 사랑이구나. 비록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



학교를 파하고 농구 연습도 미뤄두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후거는 원홍의 집으로 갔겠지. 거기에라도 가서 다행이야. 제일 친한 친구니까.


‘형이 나 좋아하면, 내가 다 책임질게.’

‘형만 짊어지게 하지 않을게.’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와 시커먼 거실이 보고 싶지 않아 가끔은 등교를 할 때도 불을 켜두고 가는 편이었다. 전등은 환하지만, 그 아래에 반겨주는 가족은 없다. 피곤한 얼굴로 가방을 내려두고, 바로 소파에 드러누웠다.


학교에서 후거를 봤다. 후거는 날 못 본 것 같지만,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1학년 건물로 가는 모습을 봤다. 둘 사이의 관계가 어그러지지 않았다면 건화는 빠르게 뜀박질을 하여 후거를 붙잡았을 테고, 후거는 제 친구들을 보내고 건화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눴을 테였다. 둘만의 대화라지만 그 속에 대화 내용은 보잘 것 없다. 오늘 급식 맛이 어땠는지, 숙제를 얼마나 잘했는지. 주말에 무얼 하고 지낼 건지. 

하지만 말을 걸기는커녕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형이 나 좋아하면, 내가 다 책임질게.’

‘형만 짊어지게 하지 않을게.’


대답하고 싶었다.

좋아한다고.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더 크게 좋아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말하는 순간, 어리석게도 아직도 한낱 애정을 바라는 나는 두 번 다시는 부모님께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네가 울고 있고 슬퍼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후거가 떠나고, 혼자 농구 코트 위에 무너졌다. 둔탁하게 닫히는 문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리고 그 순간 발아래가 우수수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끝도 없는 무저갱 속에 무너지고, 가파른 절벽에 간신히 손으로 붙들고 있는 상황.

그 상황 속에서 나에게 손을 내밀어줄 사람은 부모님이 아니라, 후거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나는 뒤늦게 너를 쫓아갈 용기조차 없다.



나에게 없던 것이 되고 싶었고 내가 받아보지 못한 것을 내 아이에게 주고 싶었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외로움 없이 키우고 싶고, 건화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었다. 

생각하면 내가 잘못 된 거였다. 버팀목은 굳이 누군가의 부모여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내가 견뎌내지 못할 땐 후거가 버팀목이 되어줬으니까.


내가 틀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내 잘못이었다.


천장의 등이 눈동자를 따갑게 내리쬔다. 뻑뻑한 눈을 감았다. 관자놀이 사이로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훔쳐내며 급하게 숨을 몰아쉰다.


보고 싶어.


내가 그 말을 할 자격이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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