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차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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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차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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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엄마가 학교에 찾아와서 지금 엄마 차타고 집 가는 길이야. 오늘 형 집에 못 갈 거 같아. 미안해.]


문자를 쓰면서도 여러 번 고쳤다. 미안해를 넣을까, 넣지 말까.

서너번 완전히 글을 지우고, 다시 쓰고, 뒷말을 붙여 넣고. 그러다 포기하고 전송을 누른 후에 폴더를 닫았다. 탁. 그 소리에 운전하고 있던 엄마의 눈길이 닿는다. 후거는 손에 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떨리는 마음을 추슬러 본다.


“친구야?”

“어?”

“친구한테 문자 보내는 거야? 원홍?”

“어? 아니...”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걸 엄마가 아는 이상, 저런 다분히 평범한 물음조차도 추궁으로 느껴졌다. 안전벨트를 꾹 잡은 후거는 고개를 약하게 저었다. 아니. 아니야. 


“홍이는 잘 지낸대?”

“어..”


한 달이란 시간이 흐르고서야 만난 엄마. 그간 못 봤다고 낯이라도 가리는지, 짧은 대화조차도 어색하다.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연신 문지르며 불편한 티를 낸다. 그게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저도 모르게 하게 되는 것이었다. 긴장되어 누군가 툭 건드리면 소스라치게 비명이라도 지를 것 같아서, 뭐라도 하며 긴장을 풀려는 것인데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왜 갑자기 엄마가 나타나고, 왜 이제야 온 건지. 부모님을 보게 되면 해결될 것 같았던 문제들은 그대로다. 오히려 야금야금 후거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무서워서 온몸이 비쭉비쭉 서는 것 같다.


“학교에 두고 온 건 없어? 책가방 없는 거 같은데.”

“어.. 교실에 있어.”

“아이고, 엄마가 그 생각을 못했네. 지금 다시 학교 갈까?”

“아니.. 친구한테 문자 보내 놓을게. 가방 좀 챙겨달라고 하면 될 거야. 중요한 건 없으니까..”

“그래?”

“응..”


엄마의 눈길에 허벅지에 닿는 것을 느끼곤 불안한 듯 자꾸만 매만지던 손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내 길을 잃은 손을 어디 둬야 할지 갈팡질팡 하다 꼬옥 맨 안전벨트를 잡는다. 형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아직 수업 중인가. 내 문자는 봤을까. 형이 실망하려나. 오늘 같이 하교하려고 했는데. 아랫입술을 질끈 물고 형 생각. 

어제는 정말로, 아침에 눈 뜬 순간부터 한밤에 눈을 감는 순간까지 행복했다. 형과 나누는 사소한 대화도 즐거웠고, 형과 눈이 마주치면 함께 웃는 것도, 어깨에 기대는 것도, 형이 말해주는 “사랑해.”를 듣는 것도 기뻤다. 상상만 하던 것을 실제로 겪으니 상상 그대로 간지럽게 후거에게 닿는다. 귓가가 간질간질하고 다물린 입술을 자꾸만 말려 올라갔다. “나도 좋아해.” 후거가 낯간지럽다는 듯 살며시 말한 대답에 건화는 앉은 몸을 들썩이며 기꺼워했다.


“감기는 안 걸렸어?”

“...어... 걸렸었나. 기억이 안 나네.. 근데 지금은 괜찮아.”

“겨울인데 조심해야지. 따뜻하게 입고 다녀야 해.”

“응.. 엄마는?”

“엄마도 감기 걸렸었는데 나은지 얼마 안 됐어. 일주일은 병원에 있었는데... 엄마 안 보고 싶었어?”


그래서 얼굴이 수척했구나. 우리 엄마 어지간하면 병원에 안 가려는 사람인데, 일주일간 입원했으면 지독한 독감이었나 봐. 죄책감에 고개가 무거워진다. 이어진 보고 싶지 않았냐는 말에는 이윽고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안 보고 싶었을 리가 없다. 매 순간, 매일 마다 보고 싶었다. 오늘은 연락이 오지 않을까, 혹시 내가 못 받은 게 아닐까, 무슨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엄마아빠가 날 버리지 않았을 거라는 얕은 희망. 가는 실을 겨우 붙잡고 살았다.


“....”

“안 보고 싶었나 보네.”

“아니야. 보고 싶었어.”

“....”


하루하루 시간이 흐를때 마다, 말한 것을 후회했다. 내가 모든 걸 속에 삼키고 살고 있었으면 편했을 텐데.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힘들더라도 숨기고 비겁하게 살고 싶지 않아 모든 걸 말하고 나온 건데 뒤늦게 후회했다. 그리고 동시에 후회하는 자신이 미웠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너무 힘들어.


횡단보도를 앞에 두고 차가 멈췄다. 엄마의 손이 다가와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린다. 


“집 나가니까 고생이지?”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뚝뚝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나온 부드러운 목소리에 지레 겁먹은 마음이 조금씩 풀어진다.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여러 번 끄덕이는 머리에 엄마는 웃음소리를 내며 후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 머리카락에 찬바람이 남아있다. 한 달간 혼자서 얼마나 겨울바람을 맞았을까. 젖은 뺨도 매만지고, 못 본 지 오래된 손도 한참 쓰다듬었다. “내 아들.” 목이 메인 엄마의 말 한마디에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내 아들. 우리 아들. 제어할 틈새도 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져 연신 문지르던 허벅지 위를 짙게 물들였다. 차를 출발시켜야 해서 엄마의 손은 후거의 뺨에서 떨어졌으나 후거는 여전히 엄마의 손길 아래 감싸인 기분이었다.


“엄마 원망 안 했어? 전화도 안 하고. 찾아오지도 않고.”

“....”


안 했을 리가. 간절한 만큼 원망했다.


“엄마도 몇 번이나 찾아가려 했어. 왜 안 그랬겠어. 근데도 참았어. 너 잘 지내는 거 알아서.”

“...어떻게 알아.”

“너 나간 첫날에, 원홍한테 전화가 왔어.”

“...걔가?”

“네가 중학교 친구 집에 있다고. 무슨 일 있는 거냐고 하던데.”

“.......걔가 왜...”

“엄마가 홍이한테 그전에 전화를 했었거든.”


뜬금없이 튀어나온 원홍. 걔가 왜... 일부러 원홍의 집엔 제일 마지막으로 갔다. 근데도 첫날부터 알고 있었다고? 울음까지 그치며 숙인 고개를 든다. 아. 중학교 친구였으니 결국 대부분 다 친하다. 후거가 원홍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도 조금도 지켜지지 않고 원홍의 귀까지 전달됐구나. 


“걔가 너 중학교 때 친구 집에 있다고 엄마한테 알려줬어.”

“....”

“네가 딴 친구 집에 갈 때 마다 엄마한테 문자 줬고.”


배신자.

나한테 그런 티 조금도 안 냈으면서. 아니, 원홍뿐만 아니지. 내 친구들은 다 배신자였어. 왜 내 개인사를 다 걔한테 알려줘. 억울해서 눈앞이 따갑다. 본인을 걱정해서 그런 것 다 안다. 하긴, 누가 봐도 후거의 꼴은 가출청소년이었다. 커다란 가방. 한 번도 그런 적 없던 애가 며칠 째 신세를 지려고 하는 것들. 모르는 게 바보였다.

그래. 원홍이 때마다 엄마에게 내 위치를 알려줬다고 해도, 그래도 한 달이 넘게 연락하지 않은 것은 말이 안 된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창밖을 본다. 흐릿한 날씨. 곧 비가 올 것 같다. 아침에 학교에 나오기 전에 본 뉴스에서는 비 소식은 없었다. 건화도 우산을 안 챙겨갔고. 어둑한 하늘을 보다, 차가 익숙한 곳으로 진입한 것을 깨달았다. 바로 건너편에 형의 집이 보였다. 화분이 가득한 마당. 그리고 옆집에 나와 있는 페페. 옆집 아저씨와 산책 예정인지 목줄을 멘 페페는 아저씨의 허리에 매달려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형의 집과 페페. 잠깐의 추억이 담긴 것들은 차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금방 사라진다. 뒤돌아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으나 후거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학교에도 몇 번 찾아갔었어.”

“....”

“수업받는 네 얼굴 몰래 보고 갔어. 엄마도 너 보고 싶었어. 넌 엄마 마음 몰라.”

“...나는, 엄마가 날 버린 줄 알았어.”

“엄마가 널 왜 버려.”


버린다는 말은 후거에게도 엄마에게도 날카로운 단어다. 말을 꺼내는 후거도 입안에 상처가 이는 것 같고, 엄마는 후거의 입에서 그 소리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얼굴이었다.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그런 소리 하지 마.


“저녁 안 먹었지?”

“응..”

“먹고 싶은 거 없어?”

“모르겠어.”

“이제 집에 다 왔네. 집 가서 생각해봐. 그럼.”


익숙한 반면에 지금은 낯선 집. 변한 것 없는 외관을 보고서도 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가 날 찾아왔다는 것도. 다시 집에 돌아왔다는 것도.

먼저 차에서 내리는 엄마를 뒤따라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형의 집과 달리 우리 집 마당에 자리 잡은 화분들은 가지치기는커녕 물도 가끔 생각나면 주는 편이라 다소 생기가 없다. 나중에 형한테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물어봐야겠어. 아직 화분 이름도 잘 모르지만. 눈으로 마당 안을 훑는다. 그 사이 엄마는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있었다. 달칵 돌아가는 동시에 문을 열며, 깜빡했다는 듯 그녀가 뒤돈다.


“열쇠 없지?”

“방에 뒀어.”

“열쇠 잃어버리지 말고 잘 가지고 다녀.”


혹시나 다시 집에 들어가고 싶어 질까 봐 열쇠도 두고 왔다. 책망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고개는 끄덕이지만 아직도 모든 것이 몽롱하다. 마침내 집안에 들어와, 후거가 눈물을 삼키며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던 풍경과 별다를 것 없는 모습을 봤을 때도. 

제집에서 어색하게 거실에 멀뚱히 서 있자, 분주하게 문을 닫으며 안으로 들어오던 눈이 후거의 어깨에 닿았다. 시선을 느껴 뒤돌아본다. 


“거기서 서서 뭐해? 다리 안 아파? 방에 들어가서 씻고 옷 갈아입고 나와.”


아. 그래야지. 집에 들어오면 그래야 했었지. 집이 너무 오랜만이라 멍청하게 모든 걸 잊은 것 같다. 어설프게 웃는 모습을 보이며 제방의 방문 앞에 선다. 엄마에게 들키지 않게 작게 심호흡한 후, 차가운 문고리를 손에 잡고 천천히 잡아 돌렸다. 어두운 방안이 점점 눈에 드러날 때마다 그 안에서 몇 달 전의 후거가 겪었던 갈등, 걱정, 우울, 아픔들이 파도가 되어 쏟아졌다. 순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



[엄마가 학교에 찾아와서 지금 엄마 차타고 집 가는 길이야. 오늘 형 집에 못 갈 거 같아. 미안해.]


얼른 수업 마치고 후거와 함께 하교할 생각으로 들떠 있었다. 평소라고 수업 내용이 머리에 쉽게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유달리 수업 내용이 허공 위를 부유한다. 실은 수업이 아니라 곽건화의 정신이 그랬다. 

이따 뭐하지. 무슨 대화하지. 뭐 먹고 놀지.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얼굴근육이 꿈틀꿈틀 할 지경이었다. 선생님이 수업을 마치자마자 바로 서랍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냈다. 이제 한 시간만 더 하면 된다고 문자 보내려고 했는데, 이미 후거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어머니가 오셨다고. 

갑작스런 이야기에 금방 이해하지 못했다.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읽고 나서야, 후거의 어머니가 드디어 후거를 찾아오셨고, 후거는 본인의 집으로 가게 됐다는 걸 깨달았다.


“아...”


후거에겐 좋은 일인데 아쉬운 마음이 드는 내가 죽일 놈이겠지. 가슴 한편이 쓰라리다. 고작 며칠밖에 같이 못 지냈는데. 후거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들어가는 게 좋은 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원망스러운 한편,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고 싶은 건 당연하다고 위로하는 것이 한편. 아쉬워도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다행인 일이었다. 솔직히 늦으신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도, 늦게라도, 아니 너무 늦기 전에 와줬으니 다행이다. 건화의 경우에는 기다리다 지쳐 종래에는 포기해버렸으니까.


[잘됐네. 집에 도착하면 문자나 전화해.]


휴대폰은 다시 서랍 속에 넣는다. 기뻐야 하는데 마냥 기뻐하지 못해 죄책감에 몸이 무거워진다. 아직 어른이 되려면 한참 먼 것 같다. 뜨거운 눈꺼풀 위로 손가락을 문지르며 한숨을 뱉는다. 수업 마치고 전화해야지. 



***



끙끙 앓으며 누웠던 침대. 무너지는 마음을 모아 안고 편지를 썼던 책상. 답답해 미치려고 할 때 늘 창문을 열고 차가운 공기를 마셨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 이미 형과는 모든 걸 다 풀었으나 책에 나온 저자의 사례와는 달리 후거는 과거의 아픔을 홀가분하게 털어내기 힘들다. 왜 일까. 나는 이미 다 극복했으니 예전에 아팠던 것은 더 이상 아무렇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닌가. 석연찮은 얼굴로 문을 닫는다. 달칵. 하고 닫히자마자 다시 잡념이 머릿속을 파고든다. 부모님과 섞이기 힘들었던 때. 후거는 두 분과의 단절을 방문을 잠그는 것으로 선택했다.  


어두운 방안에 전등부터 켜서 밝힌 후에 창문을 가린 커튼을 걷었다. 바깥의 가로등이 하나 둘 켜졌고, 동시에 후거의 주머니에 든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반사적으로 놀라 열어보니 형의 문자. 전화나 답장을 하라는 이야기였으나 지금은 뻔히 수업시간이다. 괜히 휴대폰이라도 뺏겼다가 안에 내용을 보면 안 된다. 이따 씻고 나와서.. 형 수업 마쳤을 시간에 전화해야지. 환하게 빛을 뿜는 휴대폰을 물끄러미 보다 화면이 꺼졌을 때야 폴더를 닫았다. 비록 답장은 하지 못했으나 순식간에 까만 어둠이 잠식한 마음에 환기는 되는 것 같다. 휴대폰을 소중하게 침대 머리맡에 내려놓은 뒤, 옷장에서 편하게 입을 옷을 꺼냈다. 아. 집에 오긴 왔구나. 마음은 전혀 편하지 않지만..




씻고 난 뒤에 저녁식사를 했다. 뭐가 먹고 싶으냐고 물었으면서 이미 저녁의 메뉴는 정해져 있었는지 후거가 씻은 사이에 저녁 준비가 끝나 있어서 본인의 의사를 피력할 시간도 없었다. 어차피 딱히 먹고 싶었던 것도 없었고, 가출 한 순간부터 생선도 먹지 않겠다는 다짐도 물거품이 됐기 때문에 상관없다. 빨간 양념에 버무려진 새우를 젓가락으로 콕 집는다. 엄마는 밥 한술을 뜨고 후거의 얼굴을 보고, 반찬 하나를 집어 입에 넣으면서도 후거를 본다. 오랜만에 먹는 집 밥에 깨작대던 후거도 여느 때보다 열심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엄마가 아무리 쳐다봐도 꿋꿋이 참아내면서.

 

“학교생활은 똑같고?”

“응. 뭐 똑같지.. 시험 끝나면 또 시험 공부해야하고..”

“쉬엄쉬엄 해.”

“응.. 아. 아빠는?”

“아빠는 오늘 출장 가셨어. 내일 와.”

“아빠도 같이 있으면 좋은데..”


아빠 얼굴도 못 본지 오래 됐어. 사실 아빠는 엄마보다 더 못 봤지.. 엄마한테는 그날 오후에 얼굴 비추고 사라졌으니까. 아빠가 더 섭섭해 하려나. 


“아무리 가출을 해도 좀 잘 먹고 다니지. 얼굴이 그게 뭐야?”

“엄마도 얼굴이 그게 뭐야?”

“엄마야 네 걱정하느라 그랬지. 아들이 가출했는데 밥이 넘어가겠어?”


책망하는 말투에 후거의 목소리가 쏙 들어간다. “미안해.” 작게 속삭이듯 사과하고는 다시 젓가락을 들어 반찬을 집는다. 그런데. 왜인지 위화감이 자꾸만 든다. 엄마를 만난 순간부터, 사라지지 않는 위화감. 어딘가 만들어진 듯한 시간. 뒷목이 서늘해지고 고작 젓가락 하나 든 손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후거는 젓가락 받침 위에 두 짝을 나란히 내리고는 따뜻한 찻물을 삼켰다. 엄마는. 후거와 다시 마주한 그 순간부터. 단 한 번도... 단 한 번도... 


“왜? 맛없어?”


잘 먹던 애가 갑자기 수저를 내리니 의아하다. 아직 밥그릇에 밥은 반이나 남아있는데. 후거는 식탁의 모서리를 손가락이 하얗게- 그리고 빨갛게 변하도록 꾸욱- 누르다 손을 아래로 숨겼다. 순식간에 속이 매스껍고 불편하다. 더 이상 아무것도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 설마. 아니라는 생각을 품고 있긴 하지만, 실은 그 상황에서도 설마일 리가 없다는 생각 또한 함께 들었다. 다물린 입술을 벌리고,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엄마를 본다.


“엄마.”

“응.”

“왜.. 아무 말 없어?”

“응?”

“나 게이야.”


나 집 나간 거. 그래서 나간 거잖아. 내 편지 읽었잖아. 


목울대를 넘겼다. 엄마의 손에 들린 식기도 아래로 내려간다. 그녀는 후거를 찬찬히 눈으로 훑고는 후거가 그랬듯 따뜻한 물 잔을 손에 쥐었다. 마시진 않고, 가만히 쥐며 찬찬히 숨을 골라냈다. 대답이 늦어질수록 마음은 더 초조해졌다. 허벅지 위에 놓은 손을 꾹 쥐었다가, 두 손끼리 맞잡아 비틀다가, 발끝을 세워 의자 다리에 기댄다. 참다못한 후거가 다시 뱉었다.


“왜 아무 말 안 해?”

“...없던 걸로 하자.”

“....”


그 순간 감당하기 힘들게 몰아치는 절망감. 괴로움. 

왜 엄마를 만났으면서도 그렇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는지, 왜 과거의 아픔을 보고도 후련함이 아니라 다시 고통을 느꼈는지 깨달았다. 완전히 해결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계속 등 뒤와 그림자를 밟는 꺼림칙함. 불안함들....

떨리는 손을 붙잡고 입술을 깨물었다. 형이 보고 싶다.


“우리 없던 걸로 하자. 엄마도. 아빠도. 아무것도 못 들은 걸로 할게.”

“....”

“너도 잘못 알고 있는 걸 수도 있어. 엄마가 그동안 많이 찾아봤어. 찾아봤는데.. 어릴 땐 가끔 그런 경우가 있대. 잘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했어. 그럴 수 있어. 그러니까 우리....”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내가 어려서 착각한 거면 좋겠어. 근데, 아니야. 엄마.”

“....”

“나도 다 착각이면 좋겠는데 아니야. 엄마. 나 진짜야. 진심이야.”


후거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분위기는 차가워져가고, 마주보고 있는 엄마의 표정마저 무너져 내린다. 듣기 싫다는 것처럼 고개를 젓고 눈을 감고는. 적막 속에 귀가 멍멍해 질 쯤. 한참 뒤에야 대답이 흘렀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어떻게 엄마한테 이래.”


원망에 가득 찬 언성. 꾸역꾸역 참아내던 눈물이 기어코 터졌다. 원치 않게 양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빠르게 훔쳐내며 고개를 곧게 편다. 나는 잘못한 것 없다. 방탕하게 군적도 없고, 학교를 빼먹은 적도 없고, 공부에 소홀히 한 적도 없다. 최선을 다했다. 자랑스런 아들이 되기 위해서. 놀고 싶은 것 참아가며, 쉬고 싶은 것 참아가며 공부한 것은 단순히 후거가 공부를 잘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러면 엄마아빠가 좋아하니까.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제일 예뻐하시니까.


“후거.. 그냥 우리 없던 걸로 하자. 엄마도 너 미워하기 싫어. 너랑 싸우기도 싫고..”

“...왜 내 생각은 안 해줘?”

“왜 네 생각을 안 해. 다 너 생각해서 이러는 거야 엄마가 얼마나...”

“없는 사람처럼 살고 싶지 않아!”


또다시 정적.

엄마에게 소리치며 뱉었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후거는 울먹이는 얼굴을 감싸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었다. 엄마아빠의 연락을 바란 건, 이런 의미가 아니었다. 뒤로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다 흔들리는 몸을 바로 잡으며 벽을 짚었다. 짚은 벽 바로 위에는 중학교 졸업식 날에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있었다. 그 날 후거는, 중학교를 졸업한 것만으로도 뭔가 어른이 되는 기분이었고,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형과 함께 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서 하루 종일 하늘 위를 부유하는 기분이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세 사람의 모습. 다시 욕지기가 치밀어 오른다. 두 번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또 다시 느끼게 되는 감정. 굳이 예전으로 달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 되뇌었는데. 더 나아지면 되는 거라고. 근데 부모님과는 더 나아질 수 있는 건가. 아예 고개를 돌리고 있는 엄마를 보다 방 안으로 비틀비틀 걸어 들어간다. 시커먼 방에 들어서자마자 문을 쾅- 닫고, 문고리를 잡아 돌리고, 잠금 버튼을 눌렀다. 이것으로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광장 한 복판에서, 유리창 안에 갇혀 모두들에게 비춰지고 있는 것 같다. 후거는 춥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떨며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마른 사막 위에서 물을 찾는 것처럼 손을 더듬어 휴대폰을 찾아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들리자마자 바로 전화에 연결 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하얗게 빛나는 화면 위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건화형. 저장된 이름이 눈물에 흐려져 왜곡되고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서둘러 눈물을 닦아낸다. 다시 통화버튼을 눌렀지만 마찬가지로 지금은 연락할 수 없다는 대답만 반복해서 나왔다.


“으흑...”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몸을 웅크렸다. 숨이 막히도록 이불로 온 몸을 꽁꽁 에워싸고 울음소리를 죽인다. 형이 보고 싶다. 형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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