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 2016. 7. 13. 13:36
“야, 비켜봐. 나도 눕게.”
침대에 누워있는 명대를 툭툭 쳤어. 하지만 명대가 뻐기고 일어나질 않자 명대의 몸을 옆으로 밀치고 남은 자리에 눕는데 손에 쥔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어. 건화의 문자였지.
[후거 수업중이야?]
내용을 확인한 후거는 혀를 차며 인형을 끌어안은 채로 구겨진 명대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어. 야, 이거 봐.
“이거 자기가 내 수업시간표 다 외워놓고 있으면서 이러는 거야. 여기에 답장하면 나보고 공부 안하고 왜 휴대폰 보냐고 잔소리한다니까. 내가 남편이랑 사는 건지 아빠랑 사는 건지 모르겠다.”
“염장 지르지 마.”
후거의 투덜거림에 썩은 얼굴이 되어가던 명대가 바로 누운 후거의 배 위로 곰 인형을 내리쳤어.
“아, 왜 배를 때리고 그래!”
솜 인형이라 타격은 1도 없지만 명대한테 맞았다는 게 기분이 나빠 인형을 뺏어들려고 했지. 뺏기지 않으려는 명대랑, 뺏으려는 후거 둘이서 투닥대다 결국에 침대에서 둘 다 떨어져버렸어. 본능적으로 바닥을 짚은 터라 엉덩방아 좀 찧고 말았지만 반격에 실패해서 명대에게 진 것 같아 삐진 입이 불퉁했어. 떨어질 때 까지 곰 인형을 붙잡고 있는 명대에게 투덜댔지.
“넌 손에서 인형 좀 떼라. 초딩이야?”
“아까도 그 말 하더니 웃기고 있네. 난 콜렉터거든?”
“콜렉터 좋아하시네.”
비웃는 후거를 끌고 옆방에 데려가 보여주는데, 꽤나 넓은 방 안 한쪽 벽면은 아예 장식장으로 쭉 둘러져 있고 그 안에 곰 인형들이 넓은 간격으로 배치 된 걸 넘어서 위에 조명등이 있어서 그늘도지지 않게 만들어놨어. 미친.
“미친.. 곰 인형이 왜 이렇게 많아. 테디베어 박물관이야?”
테디베어 박물관 가 본 적도 없는데 안 가도 되겠다. 여기 다 있네. 혼잣말을 하며 장식장의 유리문 손잡이를 잡아 옆으로 열어보려 하는데 그 때 명대가 후거의 목에 헤드락을 걸며 못 만지게 했지. 목젖이 눌린 탓에 목구멍 막혀 사망하실 뻔한 후거가 몸을 마구 버둥대다 명대에게서 풀려놨어.
“야! 닳는 것도 아닌데 왜!”
“거기 껀 만지지마. 쟤네 만져.”
명대가 가리키는 쪽은 장식장 반대편에 그냥 책장 위에 올려둔 인형들이었어. 그러고 보니 쟤넨 왜 조명도 없고 먼지 쌓이게 저기에 있어?
목에 빨간색 체크무늬 리본을 매고 있는 하얀 곰 인형 하나를 들어보며 물었어.
“쟤넨 왜 특별 취급이야? 다 똑같이 사랑해줘야 안 삐지지.”
후거의 주먹 두 개 정도 되는 작은 인형을 손에 들고 유리문에 톡톡 두드렸지. 쟤넨 뭐야? 비싼 거야? 그 물음에 명대가 콧대를 세우며 대답해.
“쟤넨 고청명이 사준 거야.”
“이렇게나 많이 사줬어? 교수님 무슨 곰 인형 공장 하셔?”
“몰라. 왜 주는 진 모르는데 생일 때 마다 곰 인형 선물해줘.”
“너랑 곰이랑 닮아서 그런가봐.”
“귀여운 게?”
“아니 배 나온 게.”
은근히 자랑하는 말투의 명대에게 칭찬 아닌 칭찬을 해주니 바로 인형이 후거에게로 던져졌지. 저건 콜렉터니 뭐니 했으면서 지가 모으는 인형 막 집어던지는 거 봐. 너무 막 대하잖아.
“배는 네가 나왔지.”
명대가 던진 인형을 받아 챈 후거가 다시 명대에게로 집어던졌어. 품안에 쏙 안기는 곰돌이를 잡은 명대는 곰의 발끝을 후거의 배 위로 치며 반격했어. 사실 요새 들어 쪼오끔, 아주 쪼오끔 살 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쳐진 두 눈이 세모꼴이 되어 입고 있는 티셔츠를 잡아 올려 배를 드러냈어. 별로 안 쪘거든?? 여전히 배 안 나왔거든?
“아, 씨. 누가 보고 싶어 한다고 그걸 보여줘.”
후거의 배꼽을 보고 얼굴을 콱 찌푸린 명대가 기겁을 하며 곰 인형을 집어던지고 밖으로 도망쳐나왔어. 뭐! 야, 보라니까! 뒤쫓아 가던 후거는 마침 이층으로 올라오는 명대의 누나와 마주쳤지. 다행히 뛴다고 배를 훤히 드러냈던 티셔츠가 아래로 곱게 내려가서 친구 누나에게 추태는 안 부리게 됐는데, 명경은 명대와 후거의 얼굴을 반복해서 쳐다보며 인사하는 것도 잊었어. 명경이 왜 그런 반응을 하는지 아는 명대가 먼저 누나에게 후거를 소개 시켰어.
“누나 얘 후거. 대학교 친구야.”
“아, 안녕하세요.”
누나란 말에 후거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데, “아, 그래. 안녕.” 하고 대답하긴 했지만 명경은 여전히 당황스러운지 후거와 명대를 계속 번갈아 쳐다보더니 명대에게 물었지.
“명대 너 누나 몰래 숨겨둔 동생 있었니?”
당연히 그 말에 명대는 물론 후거의 얼굴도 찌푸려졌어. 얘가? 나랑?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며 쳐다봐.
어쨌든 간에, 명대 친구가 명대랑 너무 닮아서 좀 당혹스럽긴 했지만 명대가 집에 친구를 데려오다니. 중학교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라 명경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어. 이 것도 다 고교수랑 명대가 잘 돼서 그런 걸까. 환하게 미소 지은 명경은 명대와 후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어.
“명대 친구라니 잘됐네. 마침 케익 사왔는데 같이 들어요. 명대 친구랑 방에 들어 가있어. 가지고 올 테니까.”
올라왔던 계단을 다시 내려가고, 후거와 명대는 방으로 돌아왔지. 방문을 닫자마자 후거가 물어.
“누나셔?”
“어. 근데 그냥 엄마 같아.”
방 안 한쪽에 탁자에 앉으며 말해. 후거도 따라서 맞은편 의자에 앉았어. 얼마 안가 명경이 당근 케익 두 조각과 주스를 가져왔고, 후거가 다시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니 명경은 여전히 신기한 표정으로 후거를 들여다봐. 그리곤 후거가 좀 민망스러워하자 그제야 미안하다며 나갔지. 그 모든 걸 예리한 눈빛으로 지켜본 명대는, 누나가 나가고 방에 둘만 남게 되자 케익 위의 당근 모양 과자를 포크로 콕, 치며 입을 열었어.
“야, 너 언제 갈 거야.”
“뭐? 완전 싸패네. 너무한 거 아냐? 이제 온 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그런 게 아니라 우리 형들 오기 전에 너 가야할 거 같아서.”
“왜? 형들 무서워? 막 때려?”
“그건 아니고.. 그냥 그런 게 있어.”
“뭐야...”
형들이 후거를 보면 어떤 반응을 할지 차마 예측도 안가.. 후거는 명대가 얼버무리는 걸 보고 ‘명대네 형들 엄청 무섭나보다’ 하고 생각했지. 겁이 많아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원래도 늦게 까지 있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굳이 저녁까지 여기에 머물 생각이 요만큼도 없어졌어. 학교 마칠 시간 되면 집에 가야지...
“아. 우리 아저씨도 케익 되게 좋아해. 근데 자주 먹으면 몸에 안 좋다고 집에선 안 먹는다니까. 사탕 같은 거도 숨겨놓고 하나씩만 주고. 내가 무슨 초등학생인 줄 아나봐”
“나쁘네.”
“뭐?”
“뭐. 네가 나쁘다며.”
“나쁘다고 한 적은 없거든?”
명대가 맞장구쳐준다고 건화더러 뭐라니까 뚱해져서 입을 쭉 내밀고 불만을 토로했어. 그 꼴을 본 명대가 어이가 없어 혀를 차다가, 여전히 반응 없는 자신의 폰을 못마땅하게 보고 내밀었지.
“이거 봐. 고청명 연락 없잖아. 나 학교 안 나간 줄도 모르는.. 아 출석 부르니까 그건 알겠다.”
자기가 말하면서도 분노로 몸이 바들바들 떨렸어. 어떻게 연락을 안 할 수 가있어? 나 좋아하긴 하는 거야?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전화해서 교수님 지금 뭐하냐고 달달 볶고 싶었지. 명대의 그 심정을 눈치 챈 후거가 팔을 툭툭 치며 말했어.
“야. 참아. 연락하면 안 돼.”
네가 먼저 연락하면 지는 거... 이어 말하려던 때에 휴대폰이 울렸지. 건화한테 전화가 온 거라 자연스럽게 들어 받으려는데 명대가 잽싸게 휴대폰을 빼앗아갔어. 왜 저렇게 손이 빨라?
“내 놔!”
“나만 하지 말고 너도 밀당하자.”
“미친. 난 안 해도 돼.”
“나만 하기엔 억울해.”
밀당은 무슨.. 곽건화가 너무 달라붙어서 큰일인데 무슨 밀당을 해!
명대는 태연하게 휴대폰을 완전히 감춰버렸어. 후거가 손을 뻗어 뺏으려다 케익과 탁자를 엎는 사고를 칠까봐 본의 아니게 휴대폰을 인질로 사로잡힌 상황에도 얌전해졌지. 아 몰라. 케익이나 먹자. 후거가 포기하고, 결국 건화의 전화도 끊겼어. 한숨을 푹 내쉰 후거가 케익 위의 크림을 조금 떠먹으며 말했지.
“근데 너네 누나 되게 예쁘시다.”
“알아. 근데 결혼을 안 해.”
“원래 능력 있으면 안 해도 돼.”
“그래서 후거가 결혼을...”
칭찬을 했더니 이어져 오는 말이 악담이라, 적당히 달콤한 케익 맛에 취해있던 얼굴이 바로 뾰족해졌어. 이게 진짜.. 포크를 꽉 쥐고 무서운 표정으로 노려보는데 명대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반응이야.
“아니거든? 죽을래?”
“난 능력이고 뭐고 상관없으니까 결혼하고 싶다.”
“교수님이랑?”
“당연.”
“교수님은 너랑 하고 싶을까?”
“아 씨.. 진짜 정곡 찌르기 말래?”
후거의 반격에 이번엔 명대가 패배했지. 절대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청명에게 명대가 결혼하자고 하면 무슨 표정으로 어떤 반응을 할지 눈에 선했어.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껄이지 마라. 이런 말 하겠지. 아 짜증나. 분명 관계 자체는 크게 변했는데, 정작 변한 건 거의 없는 것 같아. 왜 아직도 간을 졸이게 되는지 모르겠어. 원래 연애가 이런 건가. 해본 적이 없으니 어디까지가 평범한 건지, 원래 그런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눈앞에 케익이나 열심히 드시는 연애 도우미는 도움이 하나도 안 되는 기분이고. 쓸 데 없이 마음이 복잡해진 것 같아 짜증스럽게 후거의 다리를 걷어차고 발치에 앉은 회색 곰 인형을 들어 끌어안았어. 아. 고청명.. 고청명..
***
평소에 전자기기와 그다지 친한 편이 아닌 청명이 오늘따라 휴대폰을 하루 종일 달고 살았어. 점심식사를 할 때도 테이블 위에 휴대폰을 올려놓고 눈이 자꾸만 그 쪽으로 향했지. 덕분에 같이 식사를 하던 다른 교수님이 그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묻기까지 했어. 별 일.. 별 일이야 없죠... 그냥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문자하던 연하의 애인이 갑자기 연락이 뚝 끊겼다는 것만 빼면.
현실적으로 봐서 연락이 안 온지 12시간도 지나지 않았으니 전전긍긍할 것 까진 없는데, 수업을 앞둔 고교수의 머리엔 온통 명대의 생각만 들어찼어. 왜 연락이 없지. 화났나? 혹시 어제 내가자고 가란 말에 됐다고 그냥 집에 가서 화난 건가. 아니. 애초에 거기서 잘 수도 없고 자고 가는 게 더 이상하잖아. 그런 걸로 화낼 성격은 아닌데.
어디서부터 잘못 됐을까. 명대가 보낸 사진에 바로 답장을 안 해서?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그렇게 화 낼 일은 없는 거 같은데.
퇴근 후에 집에 돌아온 그는 저녁약속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빠르게 씻고나오자마자 바로 휴대폰을 확인했어. 다섯 시 오십분. 저녁인데 아직까지 명대의 연락은 하나도 없지. 물기가 뚝뚝, 느리게 물방울이 침대 시트 위로 떨어지고 어제 있었던 일을 차분히 하나하나 떠올린 청명은 뻐근한 눈을 길게 감았다 뜨곤 메시지 화면을 열었어. 두꺼운 엄지손가락으로 천천히 글자를 적어 내려갔지.
[오늘 아파서 수업에 안 나온 거야?]
그 때 명대는 퇴근하고 돌아온 명루에게 현관에서부터 용돈을 달라고 땡깡 부리고 있었어. 신발도 제대로 벗지 못한 명루의 뒷목에 매달려서 용도오온!! 용도오온! 하고 칭얼댔지.
“명대 너 저번 주 주말에 용돈 받아갔잖아.”
“아, 다 썼어! 쥐꼬리만큼 줘놓고선!”
“쥐꼬리라니. 너 네가 돈 벌어봐. 그 말이 나올 것 같아?”
“나오는데? 나오는데? 어차피 줄 거면서 그냥 빨리 줘!”
“형님 피곤하신데 매달리지 마.”
지나치게 당당한 명대의 태도에 아성이 등을 손바닥으로 퍽 때리며 잡아당겼어. 악! 짧게 비명을 지른 명대는 고집을 부려 안 빠지려고 명루의 목을 꽉 끌어안고 버텼어. 목이 꽉 졸려지자 명루도 으악. 하고 괴로워했고 명대는 형의 목을 더 세게 조르다가 아성에게 한 대 추가로 얻어맞고 나서는 타겟을 아성으로 교체했지. 바로 아성의 팔에 매달려서 용돈 줘. 용돈 줘. 떼쓰기 시작했어. 명루나 아성이나 둘 다 정신 시끄러운 기분에 대충 빨리 주고 말자는 심정으로 가방에서 지갑을 찾아 헤맸지.
“나 뮤지컬 볼 거야! 용돈!!”
온 힘을 다해 빽빽 대던 찰나, 주머니에 든 휴대폰에 알림이 울렸어. 아성의 팔을 잡고 있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안 놔주던 명대가 한 손만 빼서 휴대폰을 들어 확인했지. 잠금 화면에 떠 있는 고청명의 이름에 심장이 떨어질 뻔한 명대는 바로 아성에게서 손을 떼고 잠금을 풀어 메시지란으로 들어갔어.
[오늘 아파서 수업에 안 나온 거야?]
명대가 다급히 휴대폰을 확인하는 걸 보고, 두 형들도 슬그머니 허리를 숙여 명대의 휴대폰 화면을 봐. 고청명이 보낸 문자에, 학교에 안 갔다는 정보까지 습득했지. 아프긴커녕 기운이 너무 넘쳐서 형들을 괴롭히고 있는데.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점은. 평소 명대를 생각했을 때 고청명의 문자를 받고 좋다고 날뛰어야 할 녀석이 가만히 휴대폰만 쳐다보더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폰을 주머니에 넣었어. 답장도 안 하고 말이야. 그러고는 다시금 두 사람에게 용돈을 내 놓으라며 적반하장으로 굴었지. 귀에 빼엑빼엑 울리는 명대의 철없는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두고, 눈을 마주친 둘은 눈빛으로 대화했지. 둘이 싸운 거야? 글쎄요. 둘이 헤어지길 고대했지만 어제 그러고 나가서 싸우기라도 했는지. 명대가 대답 않고 저러니까 그건 또 마음에 안 들어.
***
평소에 수업이 마치는 시간에 명대네 에서 나온 후거는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타곤 바로 휴대폰을 켰는데, 곽건화 이름으로 부재중 전화가 14통이나 와 있어서 식겁했지. 겁이 나서 조금 망설이다가 전화를 걸었는데 수화음이 몇 번 흐르기도 전에 전화가 연결됐어. 짧게 툭, 하는 소리 이후에 바로 거친 건화의 음성이 귀에 콕콕 닿았어.
-너 왜 전화 안 받아?!
“아니이.. 내가 무음으로 해서.. 전화 온 줄도 몰랐어..”
얼마나 화가 났는지 휴대폰 밖으로 튀어나오는 건화의 목소리에 앞에서 운전하던 택시 기사님도 놀라 어깨를 움찔거려. 룸미러로 아저씨와 눈이 마주쳐서 머쓱해진 후거는 괜히 억울한 마음에 볼이 불퉁하게 부풀었어.
-하루 종일 휴대폰을 손에서 안 떨어뜨리면서도 몰랐다고? 14통을 할 때 까지?
“...응.. 몰랐어.. 미안..”
-.... 아무 일 없어?
“응. 괜찮아. 걱정 많이 했어?”
-..괜찮으면 됐어. 어디야. 집 가는 길이야?
후거랑 연락이 안 되는 와중에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근데 몰랐다고 하는데 거기다 뭐라고 더 말을 해. 한 번 더 한숨을 쉰 그는 저녁은 외식하잔 이야기 하려고 전화하려던 거였다고 말했어. 외식? 좋아. 어차피 밥 해먹기 귀찮았어..
집에 데리러 가겠다는 걸 됐다고, 이따 시간 맞춰서 나간다고 말했어. 집에 도착해서는 조금 빈둥대다가 씻고 옷 갈아입고 문자 받은 주소로 향했어. 그리 크지 않은 지중해 레스토랑이었는데 분위기도 괜찮고 사람도 많지 않아서 조용하고 마음에 드는데 문제는 지금 배고파 죽겠는데 코스요리면 요리 다 나오는데 한참 거릴 거 아냐. 오늘 먹은 거라곤 아까 명대네 집에서 케익 한 조각 밖에 없는데.
예약된 자리에 앉아서 레몬향이 나는 물만 꼴깍 꼴깍 마시면서 물배 채우고 있다 보니 건화가 도착했어. 전화로 아무 일 없었다고 했는데도 걱정이 됐는지 오자마자 후거 뺨 붙잡고 여기저기 확인하곤 둥그렇게 눈을 뜨고 올려다보는 얼굴에 쪽쪽 키스해주고 나서야 자리에 앉았지.
“오늘 안 피곤했어?”
“응? 아.. 괜찮았어..”
아침에도 몸이 안 좋다며 찡찡대는 걸 억지로 학교에 보내놨더니 몸 상태가 내내 걸렸어. 보기엔 괜찮아 보이는데. 수트 자켓을 벗어 옆자리에 걸어두고, 미적지근하게 대답하는 후거를 보며 미간에 그림자를 만들곤 이번엔 질문을 달리해서 물었지.
“학교 간 거 맞아?”
“응? 학교 가긴 갔는데...”
진짜 거짓말 아니고.. 학교 가긴 했는데... 강의실 안 들어가고.. 우물쭈물 대다 텅 빈 유리잔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딴청을 피워. 그 모습에 건화가 숨을 토해내며 눈을 감고 웃었어. 그럴 줄 알았지.
“오늘까진 아팠으니까 쉰 걸로 치고 내일은 수업 듣자.”
“응..”
눈을 도로록 굴리고 풀 죽어서 대답하자 건화가 한쪽 눈을 찡그리며 후거의 뺨 위에 손을 가져다댔어. 눈치 보느라 더 아래로 내려간 눈 끝에 눈꺼풀이 드리우고, 건화의 뭉툭한 손가락이 매끄러운 눈꺼풀 위를 스쳐 지나다가, 아래로 내려와 콧대로 미끄러지더니 도톰하게 다문 입술로 닿았지. 감긴 눈이 떠지고 후거와 눈이 마주친 그는, 낮게 잠긴 목소리로 물었어.
“뭐부터 먹을래?”
“최대한 빨리 나오는 거.”
젖살이 덜 빠진 뺨을 톡톡 두드린 건화는 바로 튀어나온 후거의 대답에 웃음을 터뜨렸어. 배고파 죽겠어. 이어서 말하는 후거의 뺨이 조금 붉어져있었지.
“그렇게 배고팠어?”
음식이 하나하나 나올 때 마다 빛의 속도로 해치우는 걸 보고 하는 말이야. 식전 빵 세 개중에 두 개를 맛도 느껴지기 전에 먹어버리더니 울망울망한 눈으로 건화는 손도 안 댄 나머지 하나를 쳐다봐서 그 것도 그냥 먹으라고 했지. 저렇게 급하게 먹다간 정작 본식 먹을 땐 배부르다고 못 먹을 것 같은데. 입도 짧으면서..
지나가던 서버가 완전히 빈 후거의 물 잔에 물을 가득 채워주고, 물이 채워지기 무섭게 다시 꼴깍꼴깍 마셨지. 저렇게 배고파하는데 그만 먹으라고 할 수도 없고. 하지만 분명 후거 먹는 거 생각해선 본식 때 깨작깨작 거리다 “나 배불러.” 하고 안 먹을 게 틀림없는데.
“점심도 제대로 안 먹어서 엄청 배고파.”
“왜 안 먹었어. 학교 안가고 뭐하고 놀았는데. 진위랑 놀았어?”
“진위 여자친구 때문에 나랑 안 놀아줘. 오늘 명대네 집에 갔어.”
빵 세 개를 혼자 다 먹고도 배고프다고 탁자 위를 조용히 두드리다보니 애피타이저로 칵테일 마리네이드한 굴 요리가 나왔어. 포크를 들고 껍데기에서 살만 발라내며 대답했지.
“아. 차 가지러?”
최대한 예쁘게 발라내려고 굴에 집중했을 때, 차 이야기가 나오자 후거의 고개가 번쩍 들려. 허를 찔린 표정에 건화가 가만히 입술을 다물곤 한쪽 눈가만 지긋이 찌푸린 채로 다시 물어.
“깜빡했어?”
“아. 아 맞아. 내 차!!!”
“차 너무 외면 받는 거 아냐?”
뒤 늦게 터진 리액션에 건화가 포크를 내려놓으며 대꾸했지. 은근히 삐진 투였어. 하긴... 선물해준 차를 그렇게 남의 집에 갖다 놓고 깜빡하고 있으면 나라도 섭섭하긴 할 거야. 조갯살 아래를 살살 발라내던 후거가 포크를 그대로 쥔 채로 몸을 배배꼬며 “왜에에에-.” 하고 건화 눈에만 애교로 보일 애교를 부렸어. 그 사이 머릿속에선 화요일 날 연락 준다면서 왜 전화가 안 온 건지 생각을...
아. 아.. 그러고 보니까.. 아까 부재중 전화 목록에서 등록 안 된 번호를 본 거 같기도 하고. 아저씨 신경 쓰느라 그건 관심도 없었네. 명대 새끼 나비효과 봐.. 내 자동차!
그래도 그렇게 많이 삐진 건 아니었는지 웃은 건화가 가볍게 굴을 발라내어 후거의 입술에 대어줬어. 사양 없이 받아먹는 후거의 머리도 한 번 쓰다듬어줬지.
“그럼 명대네 집에서 쭉 놀다 온 거야?”
“어? 응. 명대집도 엄청 크더라.”
명대 옆방에 곰 인형만 있는 방이 있는데 백화점 곰 인형 코너라고 해도 되겠다는 둥, 거기서 케익을 먹었는데 엄청 맛있어서 케익 가게 물으려다가 쪽팔려서 참았다는 둥의 이야기를 했어. 애피타이저를 먹고 나서 몇 분 뒤에 조금 전에 추가로 주문한 와인과 함께 두꺼운 두께의 안심 스테이크가 나왔어. 두께는 두꺼웠지만 후거의 주먹보다 작은 크기라 본식에 실망했어. 뭐야. 이 걸로 누구 코에 붙여. 곁들어진 아스파라거스를 포크로 찍어 아작아작 깨물어 먹었지. 사실 와인은 몇 번 안 먹어봐서 먹어도.. 그냥.... 뭐가 좋은지 모르겠어. 향은 좋은데. 아래가 예쁜 적색으로 물든 와인 잔을 콕콕 찌르며 건화가 하는 이야기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어. 그 때 후거네 테이블 옆을 스쳐 지나가던 사람이, 몇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더니 다시 길을 되돌아 와 앞에 섰지. 어. 자연스럽게 고개를 든 후거는, 익숙한 얼굴에 입술에서 포크를 떨어뜨렸어.
“어, 교수님.”
여기서 만날 줄은 몰라서 후거의 눈이 크게 뜨여져. 건화는 후거와 청명을 번갈아보더니 자리에서 조금 일어나 먼저 인사했지. 청명도 당황하긴 한 듯, 어설프게 인사하더니 눈썹을 찌푸리다 건화에게 양해를 구했어.
“죄송한데, 후거랑 잠깐 따로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차분하고 조용한 그의 평소모습과 다르게 꼭 뭔가에 쫓기는 것 마냥 불안해보였어. 건화는 내키지 않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후거에게 괜찮냐고 물었지. 어? 어.. 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고교수를 따라 일어선 후거가 그를 뒤쫓아 갔고, 건화는 두어 모금 남은 와인을 음미하지도 않고 목구멍 뒤로 넘겨버렸지. 썩 개운하지 않은 표정이었어.
멀리 가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야. 레스토랑 한 쪽에 테이블이 없는 공간으로 간 청명은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렸어. 아, 뭐야 기분 이상해. 명대랑 엮이기 전엔 그 유명한 고청명 교수 얼굴도 구경 못했는데 명대 때문에 이리저리 계속 얽히게 되니까 솔직히 좀 부담스러웠어. 교수님 학교에서 보면 엄청 긴장 되는데...
뾰족한 귀 끝을 만진 청명은 산토리니 풍경을 그린 액자 밑에 손을 대곤 입술을 깨물며 힘겹게 이야기를 시작했지. 정말, 힘겹게.
“미안한데.. 혹시 명대랑 연락 되는 지 궁금해서.”
“명대요?”
힘겹게 물은 이야기가 고작 명대랑 연락 가능하냔 거야. 그제야 왜 고청명이 후거만 데리고 와서 말 할게 있단 건지 알았어. 뭐야. 아 명대 진짜 도움이 안 돼요. 걔 연애코치 노릇을 접어야해. 퇴직해야해, 진짜.
“아니, 명대가 오늘 학교에 안 왔는데.. 내 문자에도 답장을 안 하더라고. 전화도 안 받고.”
헐. 나 나가자마자 바로 교수님한테 전화 걸었을 줄 알았는데. 문자에 답장도 안하고 전화도 안 받아? 진짜 하려나봐. 솔직히 바로 그만 둘 줄 알았는데. 명대의 의외성에 꽤나 놀랐지만 겉으로는 멀뚱멀뚱한 표정을 꾸며내고 곧 심각한 표정을 지었어.
“아.. 글쎄요. 저도 오늘은 명대한테 연락을 안 해서요.”
“...그래. 아니. 혹시나 무슨 일 생긴 걸까봐..”
“설마요. 아. 걔 게임순위 올랐던데 게임한다고 늦잠 자서 그런 걸지도.”
“..그런 거면 다행인데..”
전혀 다행인 표정이 아니었어. 청명은 무슨 일이 생긴 걸까봐 걱정 된다는 뉘앙스였으면서 표정은, 표정은 후거가 게임 이야기를 꺼내자 더 심각하게 변해갔지. 건화와 비슷한 큰 눈 아래 시커먼 먹물이 든 것 마냥 초췌해지더니 빠른 속도로 눈을 깜빡이곤, 벽을 짚은 손의 손가락은 쉴 새 없이 꿈지럭거렸어. 당황했다. 고청명 당황했다. 명대가 이 꼴을 보면 굉장히 기뻐할 것 같아.
“그럼.. 아무 일 없는 거고.. 그냥 문자에 대답을 안 하는, 건.. 가.”
“그렇겠죠, 뭐.”
“....”
“명대도 가끔은 교수님 문자랑 전화를 씹고 싶은 기분이 들 때도 있는 거 아닐까요?”
“....그래. 그래. 식사하는데 불러내서 미안하다. 계속 식사해.”
씹는다는 말은 너무 거친 언행인가? 나 왜 오늘만 사는 것처럼 말했지? 남의 연애가 잘 되어가고 있는데 정작 코치해준 후거도 뭔가 기분이 들뜨는 것 같아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긴 기분이야. 미쳤어. 내가 미쳤지. 저러고 나한테 앙심 품고 성적 짜게 주면 어떡해? 나 어떡하냐?? 뒤늦게 후회한 후거는 고청명 교수에게 모든 걸 일러바치고 싶은 심정이 들었어. 그거 다 밀당이에요. 교수님!! 걔 지금 전화하고 싶어서 손이 드릉드릉 할 거예요!!! 하지만 또 반대로, 그 모든 걸 꾸민 작자가 후거란 걸 알게 된 고청명이 수업시간마다 후거를 괴롭히고, 발표시키고, 중간 기말에 A4용지 가득채운 주관식 답변에도 최저점수를 줄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자 입이 꾹 다물렸어.
“교수님도 식사 계속하세요. 저 먼저 가볼게요.”
“그래, 고맙다.”
결국 이도저도 못하고 나대서 고청명에게 찍히기만 한 기분에 후거의 얼굴이 울상이 됐어. 건화는 아랫입술을 내밀고 낭패했단 표정의 후거를 보며 미간을 찡그렸지. 왜. 아까 그 교수가 뭐라고 했는데. 성적 꽝이래?
“나보면 공부만 떠올라? 아직 기말 남았거든?”
“아니, 그게 아니라..”
이씽. 턱을 괴고 고청명과 똑 빼닮은 건화를 노려보자, 건화는 청명이 후거에게 나쁜 말이라도 한 줄 알고 일어서려했어. 그걸 붙잡은 후거는 그런 게 아니라고 결국 해명해야 했지.
“명대한테 밀당 하라고 조언해줬는데 그거 때문에 명대가 교수님한테 연락 하나도 안하고 씹고 그래서 교수님인 나한테 명대랑 연락 되냐고 물은 거야.”
당장이라도 의자를 박차고 뛰어나갈 것 같은 남편을 진정시켰어. 건화는 명대 이야기가 나오자 조금 안심하더니, 연애 조언 이야기에 한쪽 눈썹만 쓰윽- 올라가. 후거는 건화의 그 눈썹이 마음에 안 들었어.
“뭐야? 왜 그렇게 봐?”
“후거가 연애 조언을 했어?”
“왜?”
“왜 그 연애스킬을 남한테 써줘? 나한테 써주지?”
또 시답잖은 이야기한다. 그렇게 진지한 표정하고 그런 말해도 하나도 안 멋있거든? 건화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꾹 펴줬어.
“아저씨랑은 연애 안 하잖아.”
“왜 안 해?”
“결혼했으니까.”
“결혼해도 연애하는 거지.”
“뭐야.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
“나랑도 밀당 해줘.”
“미쳤어. 그게 왜 하고 싶어?”
건화는 자기 이마에 닿은 후거의 손가락을 잡아 자연스럽게 입 안에 넣으려다, 후거가 화들짝 놀라 손을 빼버리는 바람에 실패했어. 밖에서 뭐하는 짓이야! 시도 하다 실패한 걸로도 창피한지 주변을 마구 두리번거리던 후거는 손부채질을 하며 화끈한 볼의 열기를 식혔어. 누가 보면 어쩌려고.
“보면 뭐 어때. 아. 손가락을 빠는구나. 하겠지.”
“변태.”
“그게 왜 변태야?”
“몰라. 밥이나 먹어..”
그러고도 아직 부끄러워 힐끗힐끗 레스토랑 안을 둘러봤어. 그러고 보니 저쪽에 교수님 보이네. 가까이 있는 건 아니라 흐릿하게 보이긴 하는데, 교수님 포함 세 명이야. 어떤 여자분 한명이랑, 어떤 할아버지랑. 아. 가족끼리 외식인가 봐.
“왜 남편을 앞에 두고 자꾸 딴 남자 쳐다봐.”
“내가 언제.”
“방금 쳐다봤잖아.”
“쳐다본 게 아니라 그냥 있어서.. 아. 별 걸로 다 시비야! 아니거든요?”
건화가 후거의 손가락을 건드리며 묻자, 해명하던 후거는 자기가 왜 이걸 해명하나 싶어 버럭 짜증을 냈어. 건화는 계속해서 눈을 가늘게 뜨고 후거를 쳐다보다 와인을 한 모금 삼키곤 아. 하고 작게 감탄사를 뱉었어.
“지금 밀당 하고 있는 거야?”
“결국 미쳤네.”
갑자기.. 갑자기 결혼 전에 강제 데이트 하던 시절이 떠오르네. 그 때 내가 뭐라고 했더라. 아저씨 결국 미쳐서 중년 쯤 돼서 정신병원 들어갈 지도 모른다고 했던가. 아저씨 저 과부되기 싫거든요..? 후거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건화는 후거가 벌써부터 밀당을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질린 표정을 하며 고개를 내저었어.
“난 밀당 별로인 것 같아. 당기기만 했으면 좋겠어.”
“예에.”
“후거가 하루 종일 당기기만 해주면 좋겠다.”
“왜 또 무슨 이상한 소리 하려고. 하지 마. 말 하지 마!”
곽건화가 느끼하거나 변태 같은 소리 지껄일 때 짓는 표정이 보이자 후거는 뒷목이 싸늘해지는 것 같아. 들어도, 들어도 내성이 안 생겨. 들을 때 마다 처음 듣는 것처럼 닭살 돋고 부끄럽단 말이야!
“후거가 일요일 그 때처럼 내..”
“아악!”
본론은 나오기도 전에 비명부터 지르고 건화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어. 후거의 작은 손 위로 한껏 올라간 광대뼈가 아직 하고 싶은 말은 시작도 안 했다는 걸 표현하고 있었으나 후거는 들을 생각이 정말, 정말 요만큼도 없어. 내.. 까지만 들었는데도 부끄러워 미칠 것 같아서 입술을 마구 우물거리는 찰나, 손바닥에 미끄덩하고 축축한 것이 닿았지. 아! 내가 멍청이지 진짜! 건화가 손바닥을 혀로 핥자 엉덩이를 들썩이며 바로 손을 거둬들였어. 내가 저거에 몇 번이나 당했더라. 당하고도 매번 똑같이 하는 내가 바보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로 티슈로 손바닥을 닦아내는 후거를 보다가, 다섯 테이블 정도 떨어진 고청명네 테이블을 본 건화는 불편한 표정 잠깐 드러냈다가 바로 갈무리했어. 고청명 교수의 관심은 후거가 아니라 명대에게 있다는 걸 알면서도 후거가 그 교수랑 얽히면 아직도 기분이 안 좋아. 좋은 남자인 척 하려고 애쓰지만 이럴 때 마다 본인이 그다지 이해심이 넓지 않다는 게 바닥까지 드러난 느낌이야. 집착하면 안 되는데.
“청명이 너 속 안 좋아?”
“어?”
“아니. 왜 식사를 제대로 못하고 깨작대. 아무거나 잘 먹는 애가.”
후거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니 머릿속에선 자기가 어제 잘못한 게 뭐가 있을까 그 생각만 들어서 도저히 입에 음식이 안 넘어가. 그게 티가 났는지 옆에 앉은 누나가 옆구리를 치며 묻는 말에 청명은 대답을 얼버무리며 제대로 말하지 못했지. 그 때. 여전히 테이블에 휴대폰을 놓고 주시하던 청명은 화면이 반짝 밝아지더니 명대의 문자가 왔음을 알리는 것에 식기를 놓고 빠르게 휴대폰을 잡아들었어. 그 반응에 누나도 식사하시던 아버지도 놀라 청명에게 시선을 뒀지. 그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문자를 확인한 청명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죽 흐르는 것 같아.
[누나랑 형이 자취 못하게 해요.]
앞 뒤 다 잘라먹고 짤막하게 적힌 내용이지만. 한탄하려고 보낸 문자가 아니야. 분명해. 이건 은근하게 강요하고 있는 거지.
빨리 집 구해서 나오라고.
'완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화후거] 신혼인 두 사람 보고싶다 32 (2) | 2016.08.12 |
---|---|
[건화후거] 신혼인 두 사람 보고싶다 31 (0) | 2016.08.12 |
[건화후거] 신혼인 두 사람 보고싶다 29 (0) | 2016.07.13 |
[건화후거] 신혼인 두 사람 보고싶다 28 (0) | 2016.07.13 |
[건화후거] 신혼인 두 사람 보고싶다 27 (0) | 2016.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