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차여차
곽호 썰, 소설 올리는 블로그 @tarack_69
비밀번호와 기타 공지 확인은 아래의 두번째 아이콘이에요.




연 재 완 결 단 편 기 타 방명록



   여차여차
곽호 썰, 소설 올리는 블로그 @tarack_69
비밀번호와 공지 확인은 아래의 두번째 아이콘입니다.













옷가게에 나와서 북문 쪽으로 걸어가자 얼마 걷지 않아도 청명의 차가 보였어. 새까만 색깔인데도 먼지가 거의 앉지 않은 딱 봐도 고청명 거 같은 차 말이야. 조수석에 다가간 명대가 똑똑 창문 위로 노크하곤 바로 차 문을 열었어. 안에 올라탄 명대는 제일 먼저 청명의 얼굴을 잡아당겨 길-게 뽀뽀부터 시작했지. 문도 제대로 안 닫힌 터라 명대에게 강제로 뽀뽀 당하던 청명의 얼굴은 덜 닫힌 조수석 문으로 향했지. 명대, 명대 잠깐.. 여기저기 뽀뽀해대는 명대를 떼어내려고 해도 말을 안 들어. 꼭 이미 명대의 머릿속에서 밀당은 사라진 것처럼. 후거가 그렇게 밀당을 운운하고 본인도 밀당의 위력을 느꼈으나 밀당 한다고 연락 꾹 참고 기다린 거 얼마나 힘들었는데. 안 해.. 목적 이뤘으니 더 이상의 밀당은 불필요하다고 느낀 명대는 청명의 머리를 더 잡아당기며 키스했어. 살짝 열린 문 사이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게 보이니 결국 청명이 명대를 억지로 떼어냈지. 바로 명대가 뾰족한 눈으로 청명을 노려봐.


“왜요!”

“문도 덜 닫았잖아. 학교 앞인데 누가 볼 수 도 있어.”

“치..”


학교 앞에서 교수랑 학생이랑 키스하고 물고 빨고 있는 거 들키면 끝장나는 건 명대도 아니까 입을 쭉 내밀고 불만이라는 듯 팔짱은 껴도 더 이상 달라붙진 않았지. 문을 쾅 닫은 명대는 안전벨트를 끌어매며 말했어.


“오늘 어디가요? 집 보러?”


삐진 감정은 금세 사라지고 다시 발랄한 목소리로 묻는데, 청명이 잠깐 눈을 도르륵 굴리며 난감한 듯 대답했지.


“집은 누나가 골라주기로 했어.”

“뭐야! 나랑 보러 가기로 했잖아요!”


같이 집을 고르지 못 한다는 말에 입이 빼쪽 나온 명대는 조수석에 앉은 몸을 이리저리 흔들더니 제풀에 지쳐 창가에 이마를 대고 삐죽거려.


“나랑 보러 가기로 약속했으면서.”

“미안. 일이 그렇게 됐어.”

“아.. 거울방...”

“어?”


사실 집이야 그냥 신혼부부처럼 같이 고르고 정하고 그거 해보고 싶어서 그런 거지.. 아무거나 사도 상관없어. 근데 거울방 만들고 싶은데.... 집 고르고 이사까지 누나가 다 해줄 거 아냐. 그럼 거울방은 언제 만들어..? 이사하고 나서 거울방 공사 되는 건가? 혼자서 진지하게 언제쯤 거울방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명대는 청명이 명대의 혼잣말에 그게 무슨 의미냐고 묻는 것도 못 들었지. 물론.. 들었어도 대답 안 했을 거야.


어쨌든 명대가 거울방과 물침대 위치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청명은 차를 출발 시켰어. 교외에 있는 작은 식당에 갈 생각이었는데 막 학교 근처를 빠져나오자마자 명대 오늘 수업이 없나 궁금해졌지.


“오늘 수업 다 끝난 거야? 오전 수업뿐이야?”


깊게 생각하다보니 그 조차 귀찮아져서 거울방은 일단 나중으로 미뤄야겠다고 대충 끝내고 운전하는 고청명의 손을 보고 있던 명대는, 수업 이야기가 나오자 어깨가 뜨끔했어. 명대를 한 두 번 보는 게 아니니 잠깐 신호가 들어와서 멈춰 선 청명은 눈썹을 찌푸리며 명대를 봤지. 너 설마.


“수업 있는데 째고 나온 거야?”

“에이. 한 번만 봐줘요.”

“내가 봐줘도 소용이 없는 거지. 다른 교수님들 수업인데. 남은 수업 몇 개야?”

“없어요. 없어.”


손을 내저으며 없다지만 이미 들켰으면서 뭐가 없어. 가만히 입을 다문 청명은 휴대폰을 꺼내들었지. 명대가 기겁하며 그의 손에서 휴대폰을 붙잡아.


“뭐하려고요!”

“과실에 전화해보게. 시간표 확인하려고.”

“아..! 두 개있어요! 네 시까지!”

“...수업 째고 데이트 가는 거야 지금?”

“나 말고 째는 애들 한 둘도 아닌데!”

“네가 수업 안 들어가는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지.”


명대가 쥔 휴대폰을 다시 받아간 청명은 휴대폰을 기어 뒤의 수납공간에 휴대폰을 넣고는 바로 차를 돌렸어. 아악! 그를 말리려 했지만 수업에 있어서는 한 치도 봐주는 게 용납이 안 되는 청명은, 옆에서 명대가 시끄럽게 떽떽 거려도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걸 멈추지 않았지.


빠져 나온지 얼마나 됐다고, 도로 학교 정문을 지나서 경제과 건물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는 현실을 인정하지 못해서, 이대로 교수님 연구실 갈려고요? 연구실 갈 거예요? 하고 도피를 했지만 변하는 건 없었어. 청명의 손에 이끌려 다음 수업이 있는 강의실까지 질질 끌려간 명대는 우울한 얼굴로 가방을 챙겼지. 아.... 짜증나..................



***



후거의 차는 다행히 건화가 아직 퇴근하기 전에 무사히 주차장으로 돌아왔어. 오랜만에 보는 차에 눈시울이 찡해진 후거가 마른 수건으로 닦을 먼지도 없는 차를 뽀오얗게 닦고 지쳐서 집에 들어가서 쉬었지. 근데도 아직 저녁까진 시간이 좀 남아서 빨랫감은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공부할 생각은 요만큼도 안 들고. 건화도 바쁜지 문자 보내도 답장이 없어. 하릴 없이 뒹굴던 후거는 정말, 정말 움직이기 싫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지만 30분간 나가야지. 나가야지. 하고 고민하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아파트를 내려갔어. 운동 좀 하려고.


그러고 보니 학교 갔다 와서 저녁 전에 잠깐 삼십분 정도 요 앞에 공원을 빠른 걸음으로 걷다 오는데 저번에 봤던 그 아저씨는 한 번도 본적이 없어. 시간대가 다른가? 하긴 후거가야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비는 시간에 공원 도는 거니까 매번 시간이 맞을 수는 없을 거야. 좋은 분이지만 운동 나갈 때 마다 마주쳐서 만약에 대화라도 계속 하게 되면 귀찮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시끄럽게 음악을 틀었어. 건화가 그걸 봤다간 범죄 표적되기 십상이라고 잔소리 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없는걸 뭐. 쾅쾅 귀와 고막을 때리는 노래를 들으며 가볍게 걷다보니 날씨 때문에 금방 땀이 흘러. 아. 기분 탓일까. 이대로 몇 바퀴만 돌면 3kg는 빠질 것 같은 기분이야.


30분 운동이 계획이었지만 땀이 나서 그런지 좀 찝찝한 기분에 27분만 돌고 집으로 들어왔어.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기 전에 뻐근한 몸을 돌아보며 뒤를 봤으나 지나가는 사람들뿐이었지. 근데 꼭 누가 훔쳐보는 기분.. 헐. 귀신인가?! 귀신이 대낮부터.. 아니 다섯 시니까 대낮도 아니네! 지레 겁먹고 귀신이라 판단한 후거는 꽁지가 빠지게 안으로 쫓아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도 엘리베이터 귀신 때문에 무서워서 계단으로 올랐어. 계단도 안 무섭냐면, 무섭지. 거기다 엘리베이터보다 더 길고 차라리 엘리베이터 탈 걸 그랬다고 찡찡대며 위로 올랐어.



***



평일은 별일 없이 지나갔어. 어제는 오랜만에 건화의 본가에 가서 저녁을 먹었지. 어머니께서 워낙 이것저것 앞에 끌어 주시느라 거절하지 못 하고 결국 과식을 해서 소화제를 먹어도 배가 불러서 새벽까지 잠을 못 잤어. 둘이 손잡고 가볍게 요 앞에 산책을 갔다 와도 배가 꺼지는 기분이 안 들어서.. 후거가 잠을 못 자니 건화도 못 자고 옆에 앉아서 회사에서 이야기를 해줬는데 후거는 들어도 무슨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러다가 두 시쯤 되어서야 겨우 잠들었지.


다음 날 토요일. 늦게 잤으니 좀 더 자고 싶었지만 매번 일어나는 시간에서 고작 삼십분 더 자고 일어난 건화는 여섯시간도 못 자서 영 몸에 기운이 없어. 기지개를 펴고 씻고 오니 여덟시 반이야. 후거가는 좀 더 재우려고 어제 회사에서 다 못 보낸 메일을 보내고, 유통기한이 거의 다 되어가는 호밀빵 한 조각과 시럽 반 숟가락을 넣은 블랙커피로 아침을 때우고 침대에 가 앉았지. 열시. 에어컨도 껐는데 밖에 비가 오는 날씨라 좀 쌀쌀한 편이었어. 그런지 후거가 이불로 몸을 칭칭 감싸고 자고 있었지. 버릇인 거 같은데. 결혼 초기엔 이 버릇으로 감기에도 걸렸었고. 생각해보면 그렇게 먼 일도 아닌데, 꼭 한참 예전 일처럼 느껴지는 게 우스워 픽 웃은 건화가 손가락으로 후거의 아랫입술을 꾸욱 눌렀어. 감긴 두 눈이 바르르 떨렸지. 깨어날 줄 알았는데, 후거는 오히려 잠꼬대처럼 건화의 손가락을 입에 물고 혀로 간질이며 다시 잠들었어. 부드럽고 말캉한 혀는 여전히 건화의 손에 닿아있었지. 보기 좋은 색으로 물들은 입술 사이에 든 자기 손가락을 미묘한 눈으로 내려다본 건화는, 후거의 입술 사이로 손가락을 조금 더 밀어 넣었어. 말캉한 혀를 누르고 안으로 두 번째 마디까지 넣자 후거가 입술로 야금야금 손가락을 물어 당기는데, 잠든 사람을 두고 곽건화의 뇌 속에 야릇한 상상들이 하나둘씩 피어오르고 있었지. 자는 후거가로 야한 상상을 한다고 죄책감이 생길 단계는 이제 한참 지났기 때문에 잠깐 찌푸린 그는 후거의 허리를 끌어안고 깨우기 시작했어. 열시야. 일어나.


하지만 깨운다고 한 번에 일어날 사람이면 후거가 아니지. 건화가 사정하고, 달래고, 몸을 흔들어도 싫다고 꿍얼대면서 일어나지 않아서 결국 이불 채로 안아 들어 주방까지 갔어. 물론 중간에 한 번 휘청 이느라 몸의 중심을 잃었을 때 후거가 번쩍 눈을 떴지. 생명의 위협을 받았으니까. 그래도 다행히 허공에서 대리석 바닥으로 충돌하지 않아 엉덩이의 목숨은 지켰고, 강제로 식탁 의자에 앉은 후거는 건화가 친히 그릇에 우유와 시리얼을 담아 앞에 내놓아도 부은 눈으로 눈만 깜빡였어.


“안 먹을래.”

“혼난다.”

“싫어어어.”


혼낸다는 말은 싫다고 삐진 표정을 지으면서도 대접에 말아 놓은 시리얼을 먹고 싶은 생각은 안 들어. 고개를 팩하니 돌린 후거는 건화의 어깨에 뺨을 대며 작게 말했어.


“어제 밥 많이 먹어서 아침 안 먹을래.”

“어제 먹은 건 어제 먹은 거고.”


어차피 혼낸다고 겁 줘 봤자 혼내지도 못 하는 걸 아니 후거는 이불 속에서 손도 안 꺼내고 움직이질 않았지. 이것 만 다 먹자고 달래도 말을 안 듣고. 끝내 건화가 수저를 들어 입에 대주니 겨우 입술을 벌려 받아먹었어. 애도 아니고.. 아니, 애가 맞긴 하지만.


“나 이거 말고 초코볼 먹을래.”


살찐다고 안 먹으려고 했으면서 막상 설탕은 하나도 안 들어간 곡물뿐인 시리얼을 억지로 씹어 넘기곤 이젠 또 맛없다고 투덜거려. 설탕 들어간 달달한 시리얼은 삼일이면 다 먹고 없어져서 일부러 이런 걸로 사오는데.


“초코볼 먹을 바에 그냥 우유만 마시는 게 나아.”

“자기도 이런 거 보단 초코볼 더 좋아하면서.”

“자기?”


본인도 단 거에 환장하면서 어른 입맛인 척.

건화가 입에 대어주는 수저에서 우유만 호로록 빨아 당기고 고개를 내렸어. 그 와중에 곽건화는 자기 타령을 하며 또 되도 않는 장난을 치는데 거기에 하나하나 반응해줄 기력이 없어서 그냥 건화의 셔츠자락에 고개를 파묻고 꾸벅꾸벅 졸았어. 그러자 건화가 후거의 뺨에 손등을 올리며 깨웠지. 잘려면 이것만 다 먹고 자.


“힝.. 싫어..”


저거 먹을 바엔 그냥 우유만 먹을 거야. 고개를 저으며 안 먹으려하자 건화도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렸어. 후거는 아예 건화의 목을 끌어안고 목덜미에 뺨을 파묻고 부비적댔지. 말 안 듣는 건 안 듣는 거고, 어리광 부리는 게 귀여운 건 귀여운 거니 결국 건화의 뇌에서 두 가지 생각이 상충되다가, 곧 먹이는 걸 포기하고 후거의 뒤통수를 잡고 입술을 맞댔어.


“으응..”


후거의 감은 눈꺼풀이 뜨이고, 이불을 헤집는 커다란 손이 벗겨진 이불 속으로 들어가 티셔츠를 위로 끌어올렸지. 하얗게 드러난 봉긋한 가슴을 움켜쥐자 곧바로 작은 유두가 볼록하게 서며 후거가 할딱였어. 침이 묻어 번들거리는 입술이 벌어지고 건화는 손바닥에 부드럽게 감기는 가슴을 움켜쥐다 결국 시리얼 그릇은 싱크대에 두고 후거를 들어 식탁 위에 눕혔지. 이불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등에 차가운 나무 식탁의 감각이 느껴지자 후거가 미간을 찌푸렸어. 잠옷 바지는 쉽게 벗겨져서 발목에 걸려 덜렁거리고, 건화는 여전히 날씬하기 만한 후거의 배 위에 입 맞추고 바지 속에서 성기를 꺼내 젖어가기 시작하는 구멍에다 대고 비볐지. 귀두 끝을 점점 적시더니 손가락으로 풀어주지도 않고 구멍 속으로 슥 밀어 넣어.


“흐응...”


완전히 풀어지지 않았지만 조금 흥분한 걸로 금방 젖은 구멍은 쉽게 아래를 벌려댔지. 후거는 고개를 저으며 흐느끼다 건화의 팔을 잡고 입술을 벌렸어. 그 때였지. 살짝만 들어와 감질나게 멈춰있던 것이 훅 안으로 치고 들어왔어.


“아으으...!”


끝까지 밀어 넣은 건화가 후거의 허리를 잡은 채로 움직이기 시작했어. 하으, 읏, 으아.. 신음하던 후거는 귓가에 그의 신음소리 외에도 삐걱삐걱대는 소리가 들리자 금세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


“흑, 부, 부서져.. 식, 탁 무너...”

“괜찮아. 튼튼한 거야.”


식탁이 무너질까 무서워서 울음을 터뜨려도 건화는 멈추지 않았어. 조금 약하게라도 움직이면 좋을 텐데 아무리 비싸고 좋은 식탁이라도 저렇게 움직이면 무너질 것 같단 말이야. 몸 전체가 흔들리자 상해 최고 겁쟁이 후거는 이윽고 커다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건화의 손등을 꼬집으며 울었어.


“싫어, 싫. 무서워.. 무섭단, 말이야..!”


후거가는 무섭다고 우는데, 건화의 성기를 물고 있는 아래는 꽉 조여 와서 곽건화는 미칠 지경이었지. 근데 애가 너무 무섭다고 우니 바동대는 몸을 안아서 바닥에 내린 후에 다시 움직였어. 식탁에서 내려오자 후거도 안정을 찾고 짧은 손톱으로 차가운 바닥을 긁으며 신음했지.


“흐응, 앗, 앗, 아아 아저씨이..”


허리와 다리 쪽만 건화에게 들린 채로 박히던 후거는 이내 허리를 뒤틀며 아래로 맑은 액을 흘리더니 아직 발기해 있는 자신의 성기를 작은 손으로 쥐며 발가락을 꼼지락댔어. 윽. 으읏.. 뜨거운 내벽을 가르는 성기가 자꾸만 느끼는 부분만 찔러댔지. 아, 아으으 딱딱한 바닥 위에서 머리 마구 도리질 치던 후거는 아으응, 하고 앓으며 울다 정액을 쏟아냈고, 건화도 그대로 안을 찌르다가 급하게 성기를 빼내고 사정했어. 엉덩이와 허벅지, 그 아래 바닥에 하얀 액이 뚝뚝 떨어지고, 조금 숨을 고르던 그가 후거의 상기된 뺨을 진득하게 핥자 후희에 벌벌 떨던 후거가 히익.. 하고 숨을 들이키며 눈을 질끈 감았다 떴지. 그리곤 힘이 빠져 자꾸만 아래로 내려가는 팔을 들어 아랫배 위를 어루만졌어. 손바닥과 손가락에 하얀 정액으로 미끄러지면서.


“배 아파?”


후거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린 건화가 묻자 후거가 고개를 흔들었어.


“응? 아니..”

“요즘 자주 배 만지는데. 배 아픈 거 아냐?”

“아니.. 아픈 건 아닌 거 같은데...”


정말 아픈 건 없는데. 아니. 있나?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이도 저도 아닌 대답에 건화가 의심스런 눈초리를 했지. 아무래도 전에 유산한 것도 있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후거가 배 아픈 거에 대해선 특히나 예민해졌어. 배 위에 오른 후거의 손을 내리고 후거의 배 전체를 부드럽게 문질러줬지. 드러나 있어서 차가워졌던 배가 따뜻해지자 후거가 소리 없이 웃으며 티셔츠에 대충 손을 닦아내곤 건화의 뺨을 양손으로 꾹 눌렀어. 그래도 뺨에 닿는 끈적한 감각 때문에 짜증이나 얼굴을 찌푸릴 법도 한데, 아무 표정도 짓지 않은 건화의 얼굴에서 뺨이 눌리느라 입술만 톡 튀어나왔지. 그게 귀여워서 후거가 큰 목소리로 웃음을 터뜨렸어. 귓가에 닿는 맑은 웃음에 기분이 조금 풀린 건화가 후거의 팔을 잡아당기며 일으켜 세워.


“약이라도 먹을래?”

“아니 안 먹을래..”


그 때 퇴원 한 이후부터, 후거는 되도록 약은 안 먹으려 했어. 영양제도 잘 챙겨 먹지 않았지. 가끔 비타민 정도가 아니면. 저번에 감기에 걸렸을 때도 약을 안 먹으려 해서 장모님이 꽤 골치 아파하셨어. 굳이 그렇게 모든 약을 기피할 필요는 없는데. 하지만 트라우마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아는 건화는 굳이 후거에게 억지로 먹이려 하지 않았어. 이번에도 먹기 싫다는 후거에게 그냥 고개만 끄덕여줬지.



***



청명의 새 집으로 이사는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었어. 모든 가구들이 풀 옵션으로 되어있는 집이라 가구를 옮길 게 없어서 옷과 책, 몇 가지 다른 짐들만 옮기는데도 책이 워낙 많아서 트럭을 따로 불러야했어. 그에 명대가 자기가 이삿짐 나르는 걸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명대 스스로 말하면서도 알았겠지. 도와주는 게 아니라 방해하는 거라는 걸. 청명은 힘들 테니 됐다고 저녁에 오라고 했어. 과연 고청명이 저녁에 오라는 말에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모르겠지만 명대에겐 저녁에 오라는 건, 곧 밤도 함께 보내자는 말로 들렸지. 역시. 이래서 혼자 사는 게 중요한 거야.


“형, 나 오늘 외박할 거야.”


저녁에 볼 일 있다면서 대낮부터 난리 법석을 떨더니 두 시간 동안 입을 옷을 고르고 골라 나온 명대가 거실에서 가방을 추켜 매며 말했어. 소파에 앉아 태블릿으로 신문을 보던 명루가 고개를 들었지.


“어디 가는데?”

“고청명 네.”

“거기서 자고 온다고?”


아무리 둘이서 사귀고 있다지만 어른도 있는 집인데. 눈치 안 보이냐고 물으려다, 명대가 눈치를 볼 위인이 아니라는 걸 혼자 깨닫고 쳐다보는데, 명대가 자랑스럽다는 듯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어.


“고청명 집구했어! 오늘부터 혼자 살아! 거기 놀러 가는데?”

“그래? 이야기 못 들었는데.”


막 주방에서 주스를 담은 컵을 내오며 명경이 말했어. 그 옆에 선 아성이 고개를 까닥이고, 명루는 입을 크게 벌린 채 명대를 올려다 봐. 지금 자기가 환청이라도 들은 건가 싶어서. 내, 내 귀가 잘 못 된 거겠지?


“혼자 산다고? 거기서 너 자고 오고?”

“어. 오늘 드디어 명대의 평생 꿈이 이뤄지는 날이야. 파이팅!”


명루의 물음에 당당하게 대답한 명대는 아성이 누님에게 받아든 쟁반 위의 오렌지 주스를 집어 홀라당 다 마셔버렸어. 아성이 정색하며 “너 주려고 가져온 거 아닌데.” 해도 메롱. 하고 혀를 빼꼼 내밀더니 현관으로 쪼르르 달려갔지. 아무리 고청명과의 사이를 유일하게 응원하는 명경이라도 방금 명대가 한 말에는 정신이 안 들어. 명대야, 뭐라고? 너 뭐? 하고 다그치자 신발을 갈아 신는 명대가 어깨를 으쓱였어.


“두 번 말 안 해줘.”

“너, 너.. 명대야.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해보자. 형들이랑 누나랑..”

“갔다올게!”


명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명경이 명대를 붙잡았지만 “누나랑 형들은 내일 봐-!” 하고 혼자서만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현관문이 쿵 닫혔어. 집에 남은 세 명의 표정만 좋지 않았지. 저걸 말려야해 어떻게 해야 해. 동생의 성생활에 관여를 해야 하나 말아야하나. 명대가 나가버린 명공관에는 잠시간 침묵이 돌았어.





후거가한테 전화해서 집들이엔 뭘 사가야 하냐고 물었는데, 사람을 잘못 선택했나봐. 누나한테 물을 걸. 후거도 뭘 사야할지 몰라서 음.. 으음.. 음... 하고 뜸만 엄청 들이더니 잠깐 물어본다고 휴대폰을 두고 가버렸어. 누구한테 물을 진 뻔하지. 택시에 타서 전화기만 계속 귀에 대고 있던 명대는 거의 2분 쯤 기다려서야 다시 후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


-휴지? 음료수?

“내가 그런 거 들으려고 너한테 전화 했겠냐?”

-뭐. 알려줘도 시비야.

“그런 건 너한테 안 들어도 알 거든. 그거 물으려고 네 남편한테 까지 갔다 왔어?

-뭐! 뭐!

“아. 그런 건 남의 집 갔을 때지! 고청명은 남 아니란 말이야. 아씨, 그냥 저번에 네가 샀던 란제리 사갈까?”

-미쳤냐?


고작 휴지, 음료수 그런 거 들을 거였으면 이분 기다리지도 않았어. 소득이 하나도 없어. 창가에 머리를 대고 코끝을 찡그린 명대는 후거가를 떠올리니 저절로 백화점에서 샀던 란제리가 떠올랐어. 후거가 바로 질색을 하고 소리를 지르는 터라 시끄러워서 휴대폰은 잠깐 귀에서 떼어놨지. 아니.. 근데 란제리도 좋긴 한데 처음 하는 건데 란제리는 좀 그래.


“그건 좀 그런 거 같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그래.. 나 그거 인생 흑역사야...

“오늘 가면 처음 하는 건데 란제리는 너무 화끈하잖아. 익숙해지면 어떡해?”

-미친놈이... 너 근데 진짜 교수님 집에 거울방 만들었어..?


본인이 생각하는 것과 명대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 한숨 쉰 후거는 곧이어 저번에 명대가 이야기 했던 거울방이 떠올라 물었지. 그에 이번엔 명대가 땅이 꺼져라 푹푹 한숨을 쉬었어.


“못 만들었어. 고청명 누나가 집 구해주고 다 해줘서 내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니까.”


후거가 보기엔 너무나 다행인 일이었으나, 명대에겐 통탄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어. 그런 잡담이나 좀 떨다 보니 고청명의 집에 도착했지. 택시에 내린 명대는 높은 층의 아파트를 보며 눈을 깜빡였어. 혹시 저번에 내가 아파트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해서 아파트로 고른 건 아니겠지. 누나가 정해주셨다니까... 뭐...


11층. 1103호.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11층을 누르자 그때야 집들이 선물을 안 샀다는 생각이 들었어. 오는 길에 마트에라도 들려서 진짜 휴지라도 사야했나. 하지만 이미 엘리베이터에 올랐고 지금 나가서 사오기엔 너무 귀찮았지. 아, 몰라. 그냥 가. 선물은 다음에 사지 뭐.


1103호에 도착해 벨을 누르자 안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렸어. 현관 밖에서 들릴 정도면 안에서 꽤 크게 들린단 건데. 깜짝 놀란 명대가 뒷걸음질 쳤지. 뭐야. 뭔데. 무슨 일인데. 놀라서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문을 쳐다보고 있자, 현관문이 벌컥 열렸어. 다소 놀란 듯한 얼굴을 한 청명이 문을 열었지.


“누군지 확인도 안 하고 열어요?”

“아니, 이 시간에 올 사람 너 뿐이니까.”

“..안에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아니 없어.”


있는 거 같은데.. 예리한 눈으로 쳐다보자 청명은 눈만 돌리며 회피했어. 뭔데.. 청소하다가 나온 건가? 아니면..


“뭐야. 안에 나 말고 누구 있어요!”

“있긴 누가 있어.”

“나 와서 막 숨긴 거죠?”

“숨길 곳도 없어. 안에 들어와서 봐.”


명대가 의심을 하자 청명은 반대로 더 차분해졌어. 놀랐던 기색이 좀 수그러들었지. 그리고 청명의 말대로 안에 들어가 보자, 사람을 숨길만한 곳도 없어 여. 넓은 거실에 소파와 벽걸이 티비, 티비 장 말곤 거실에 있는 게 없었거든. 아무리 풀 옵션이라도 사람이 살면 이것저것 집기들을 들일 만한데 청명은 책장이랑 책, 옷만 챙겨왔으니.


“근데 아까 왜 우당탕 소리 들렸어요?”

“넘어져서 그래.”

“어디 넘어졌는데요? 나 온다고 엄청 좋아서 뛰어오다 넘어졌나봐?”


집에 청명 말고 다른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기분 좋아진 명대가 가방을 아래로 내리며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어. 들뜬 목소리로 묻는 것에 대답을 않는 청명은 명대의 눈을 피했지.


“아. 나 집들이 선물 가져왔어요.”

“뭘 그런 걸 사오고 그래.”

“사온 거 아닌데?”


집들이 선물 이야기에 청명이 돌렸던 눈을 명대와 마주쳤지. 영 내켜하지 않는 표정이었어. 그걸 보고 입꼬리를 잔뜩 올린 명대는 면도가 잘 되어 깨끗한 청명의 턱을 매만지며 말끝을 높이며 대답하자, 청명이 눈을 반쯤 뜨고 물어.


“그럼?”

“짠! 내가 집들이 선물인데!”


한 치의 부끄럼도 없이 자신만만하게 내뱉은 명대는, 청명이 어떠한 반응을 하기도 전에 그의 뺨을 잡아당겨 입부터 부딪쳤어. 덕분에 고청명은 0.1초동안 대체 무슨 반응을 해줘야할까 갈등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

명대의 혀가 서툰 솜씨로 청명의 입술을 톡톡 치더니 입 안으로 들어왔어. 그리곤 어찌해야할 줄 모르고 입 안에서 멈춰있었지. 감았던 명대의 눈도 멀뚱멀뚱 깜빡이고 눈치를 볼 때 쯤. 결국 청명이 명대의 어깨를 잡아 벽으로 밀며 적극적으로 나섰지. 명대는 왠지 자존심이 팍 상하는 기분이 들어 뚱한 얼굴로 청명의 목을 끌어안아 당겼어.




집에 들어오자마자 부둥켜안고 키스부터 하다가, 그래도 더, 아니 훨씬 연장자인 청명이 먼저 끝을 냈어. 본인의 키스 실력에 뚱해졌던 명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제도 못 봤으니 더 하자고 했으나 청명이 인상을 팍 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지. 침이 묻은 입술을 닦아내며 이제 뭐하냐고 툴툴 댔어.


“저녁 먹어야지.”

“저녁 먹고 나선 뭐 해요?”

“..집에 가야지.”

“네?”


이거 완전 고자 아냐?

바닥에 널브러진 가방을 들어 소파 위에 올리던 명대는 집에 가라는 말에 고개를 번뜩 들었어.


“집에 가라고요?”

“..그럼 자고 가게?”

“교수님 연애해본 적 없죠?”

“갑자기 그 말이 왜 나와?”

“그 말이 안 나오게 생겼어요?”


저녁에 불러서 난 당연히 자고 가려고 잠옷이랑 다 챙겨왔는데! 눈썹 끝을 올리고 화난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포기한 듯 고개를 저어.


“자고 갈 거예요.”

“집에 가야지.”

“나 내보내면 복도에서 다 벗고 잘 거야.”

“....”


한다면 하는 성격인지라 저 말을 들으니 도저히 내보낼 엄두가 안 서. 청명은 하아. 하고 숨을 꺼뜨리곤 명대의 팔을 잡아당겼어. 저녁 먹자.


“뭐 먹는데요? 교수님이 한 거예요?”

“아니 샀어.”

“뭐야. 식사 대접을 하려면 직접 만든 걸로 줘야지.”


명대가 청명의 허리를 껴안으며 뒤에 바짝 붙는 바람에 그도 불편한 걸음으로 걸어 주방으로 갔어. 큰 집이 좋다고 했는데 집은 별로 안 크네. 혼자 살기엔 충분히 큰 집이었으나 저택에 가까운 자기네 집과 비교하면 작아도 한참 작아. 흠.. 청명의 뒤에 붙어 집 안을 둘러보던 명대는 다음 주 쯤에 고교수와 알콩달콩 저녁이라도 같이 만드는 게 어떨까 생각이 들었어. 완전 신혼부부 같네. 왜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거 있잖아. 둘이 앞치마 매고 케익 만들다가 생크림이 얼굴에 묻고.. 그거 핥아주다가 케익은 뒷전이고 주방에서 자는 거 말이야.

음흉하고 좋은 생각에 이따 저녁 먹고 나서 꼭 메모하기로 결심했지. 청명이 냉장고 문을 열자 힐끔힐끔 안을 쳐다봤어. 이미 만들어진 음식들이랑 물 밖에 없어서 명대가 시무룩해졌지.


“술 없어요?”

“어린 게 술은 무슨.”

“참나. 저도 어른이거든요?”

“어른이라고 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어.”

“하여간 꽉 막혔어.”


이런 꽉 막힌 사람을 좋다고 이년 넘게 따라 다니는 게 신기한데, 꽉 막혔다고 놀리면서도 여전히 좋아서 음식을 꺼내느라 허리를 굽힌 청명의 목덜미를 콱 깨물었어. 윽. 접시를 꺼내들던 청명이 놀라 몸을 움츠렸지.





저녁을 하고 나서 명대가 자기가 치우겠다고 나섰는데, 청명이 극구 반대했어. 너 시키면 무슨 일 날지 모른다고 질색을 해서 명대가 삐진 건 당연지사였지.


“그럼 하나도 안 치워줄래.”


흥. 삐진 소리를 내고 휴대폰만 달랑 들어 주방을 나왔어. 그리고 세 개의 방문 중에서 고청명의 방을 한 번에 찾기로 했지. 음.. 어디일까. 손가락으로 방문을 가리켜 보던 명대는 제일 안 쪽에 있는 방문의 문고리를 잡아 돌리곤 사알짝, 눈만 보일 정도로 문을 열었는데 불이 꺼져있어서 안 보여. 뭐야. 그냥 아예 활짝 열자 거실에 켜진 전등으로 안이 보였지. 침대가 있는 거 보니 역시 여기가 맞는 것 같아.


“저 교수님 방에 들어가도 돼요?”


이미 발부터 안에 넣어보고 물었어. 대답이 안 들리는데, 아마 교수님은 된다고 했을 거야. 혼자서 멋대로 결론을 내리고 불을 켰지. 대체 고교수님은 변화를 못 받아들이는 사람인지. 저번에 한 번 봤던 본가의 방이랑 다를 게 없어. 벽지 좀 다른 거? 가구 몇 개 다른 거? 그래봤자 위치는 똑같지만. 더 구경할 것도 없어서 책장에 꽂힌 책들을 훑어봤지. 책장 두 개를 꽉 채우는데. 방에 있는 책상엔 노트북만 하나 달랑 있는 걸 봐서 집에 서재도 있을 거야. 거기에도 책이 있겠지. 뭐 교수 된 거 보면 그만큼 책을 많이 읽을 테니 당연한 거지만.


침대에 걸터앉다가, 앉으니 또 눕고 싶어져서 몸을 뒤로 뻗었어. 형광등의 빛을 손으로 가리고 눈을 깜빡였지. 교수님한테 나중에 왜 교수 된 거냐고 물어볼래. 군인이랑 교수는 너무 차이가 심하잖아.. 경찰도 아니고..


가만히 누워있다 보니 짐승도 아니고 먹고 나자마자 졸음이 쏟아졌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소파에 둔 가방을 열어 씻을 준비를 했는데 청명은 아직도 주방에 있나봐. 뭐해. 설거지 아니고 아예 싱크대 전체를 닦아?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좀 이상하긴 했는데 빨리 씻고 명대님의 물기 젖은 섹시한 모습으로 어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방 째로 욕실에 찾아 들어갔지.


이 날을 위해 뮤지컬 보러 간다는 핑계로 용돈을 잔뜩 받아 챙긴 거지. 바디 샤워, 샴푸, 가운까지 새로 싹 사왔단 말이야. 집에서도 이미 씻고 왔지만 혹시 몰라서 바디 샤워 듬뿍듬뿍 짜내서 온 몸에 향이 진동하게 만들었어. 머리 까지 다 감고 스킨에 에센스 크림까지 바르고 거울을 보며 오 분을 기다렸어. 아. 근데 어떡하지. 오늘 고청명이랑 그거 하러 오긴 했는데 아무 걱정 없었는데 막상 다 씻고 가운 걸치고 거울 쳐다보니까 긴장되기 시작했어. 거울 속에 보이는 굳은 얼굴에 명대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지. 수건으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에서 물기를 닦아내면서도 심장이 쿵쿵 뛰는 것 같아. 목적이 이거였는데 욕실을 못 빠져나갈 것 같아. 왜 이러지. 왜 이제 와서 떨리는데! 그거 한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니고! 무슨 첫 경험 하는 것 마냥..


“휴우..”


심장께를 쥐고 한쪽 눈을 찌푸린 명대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샤워기의 물을 틀어 딱딱한 얼굴을 비추는 거울에 물을 틀어버렸어. 물살에 거울이 흐려지고, 명대의 굳은 얼굴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아. 왜, 왜 긴장하는데. 아씨.. 긴장하지 말라고... 애도 아니고... 진짜... 거울을 가리는 걸로도 모자란지 세면대 앞에 쭈그리다가 한참이나 지나서 욕실에서 나왔어. 방금 씻어서 촉촉한 모습을 보이려 했더니 그 사이에 다 말라버렸지.


근데 그 때 까지도 주방에서 씨름을 하고 있었던 건지, 청명이 막 주방에서 빠져나왔어. 그리곤 가운만 걸친 명대를 보며 눈을 크게 떴지.


“섹시하다고 말 할 거면 안 해도 되요. 알거든요.”

“....”


뻔뻔하게 말하는 명대에게 뭐라 하지도 못한 청명은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며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어.


“잠옷은.”

“이러고 잘 건데요?”

“..내가 소파에서 잘 게.”

“또또 이상한 소리 한다. 남도 아니고 왜 따로 자려고 해요.”


발이 바닥에 붙기라도 한 것 마냥, 청명은 움직이질 못했어. 누가 저 인간을 서른 넘은 남자로 봐. 초등학생도 저렇게 까지 부끄러워하진 않겠다. 대체 왜 욕실에서 혼자 떨려했는지 허탈할 지경이었지. 전혀 섹시하지 않은 걸음으로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가자, 청명은 아예 눈을 감아버렸어. 명대가 코앞에 있어서 도저히 눈길을 돌릴 곳이 없었거든.


“누가 보면 내가 다 벗고 있는 줄 알겠어요.”

“....”


고청명의 감은 눈 아래로 길게 그림자가 드리워진 속눈썹을 보다가, 손을 올려 그의 눈꺼풀을 매만졌어.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바짝 붙어있는 상황이었지. 내외하려는 고청명이 귀여운데, 여전히 심장은 쿵쿵 뛰었어. 자꾸만 긴장이 되고, 걱정이 되고... 그 감정들을 애써 무시하며 청명의 턱 끝에 입 맞추고 그의 손을 잡아끌어 약하게 묶어둔 가운의 끈을 잡게 했지. 그 때 청명이 눈을 떴어.


“....”

“....”


아무 말이 오가지 않고 눈만 마주치는 상황에서, 고청명의 그 두 눈이 완전히 자신에게 닿아있는데, 꼭 그 눈빛이 명대가 입고 있는 가운을 천천히 벗겨 내리는 것 같아.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명대의 얼굴을 보던 그는, 입술을 꾹 다물다 힘을 빼고는 명대의 손이 여전히 그의 손 위에 오른 채로, 가운의 끈을 잡아당겼지. 바로 그 때였어.


“아..”


벗겨지려는 가운을 잡아 챈 명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저었지.


왜 떨리고 걱정됐는지 알아차렸거든.

고청명과의 처음을 앞두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에게 몸을 비추는 게, 그와 관계를 나누면서 나를 드러내는 게 무서웠던 거야. 과거는 바꿀 수 없거든. 아무리 좋은 화장품과 향에 감추려고 해도, 명대가 지난 시간 학대해왔던 것은 바꿀 수 없으니까.

스스로가 깨끗하지 않다고 느껴져서 명대에게 있어 그 누구보다 고결한 고청명에게 자신의 치부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 부끄러워. 만약에, 고청명이, 만약에...


“왜 그래.”


먼저 나서서 유혹했으면서, 막상 옷을 벗기려니 겁먹은 표정으로 몸을 감추는 게 이상했지. 청명이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를 내어 명대의 어깨를 붙잡자, 명대는 입술을 떨며 고개를 가로저었어.


“아니, 아니... 나중, 나중에 해요.”

“갑자기 왜 그래?”


금방 까지만 해도 밝아보였는데. 삽시간에 어두워진 얼굴로 청명의 팔을 뿌리치고 뒷걸음질 치는 게 이상했어.


“명대.”

“.....나중에 해요..”


청명이 안으려 하자 명대의 반항이 더욱 거세졌어. 대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어. 실수한 건 없는 거 같은데. 왜 갑자기 이렇게 불안정해 하고 무서워하는지. 명대의 뿌리침을 막고 팔을 붙잡아 껴안자 명대는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그를 쳐다봐. 거울 위로 물을 뿌려 외면했던 것처럼, 명대의 두 눈에도 눈물이 들어차 청명의 얼굴이 흐리게 보였지. 흐, 흐으.. 엇박자로 숨을 몰아쉰 명대가, 메인 목소리로 그를 불러.


“교수님.”

“그래.”

“교수님이랑 자기엔..”


제가 너무 더러운 것 같아요.

뒷말은 마음속으로 꾹 삼키며 눈을 감았어.



***



“생선 오븐에 구우면 비린내 하나도 안 난대.”

“오븐 속에 비린내가 나지 않을까.”

“음... 호일에 싸서 넣어볼래.”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어차피 저녁 시간 한 시간 남았는데 뭐. 아저씨 배고파?”

“괜찮아.”


위에서 운동하고 올게. 알았어.

대충 대꾸하고 한 손으론 코를 막고 머리가 잘려나간 생선을 종이 호일에 돌돌 말아 오븐에 넣었어. 아. 예열해둬야 하는데. 뭐 빵 굽는 것도 아닌데 괜찮겠지. 인터넷에 검색해서 온도랑 시간도 맞추고.

생선은 먹을 땐 맛있는데 비린내가 너무 문제야. 가스오븐에 불이 켜지는 걸 확인하고 소파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 TV를 켰어. 예능 채널로 돌려서 이상한 요리 만드는 거 구경하다보니 십 분이 지난 거야. 자꾸 눈이 오븐 쪽으로 향해. 됐으려나? 됐으려나? 이십분은 해야 한다는데 자꾸 눈이 그 쪽으로 가. 결국 성질을 못 참고 리모컨은 내팽겨쳐두고 오븐 앞으로 쪼르륵 달려갔지. 아무리 오븐 안에 있어도 조금씩 생선 냄새가 나는 것 같긴 해. 굽기 전보단 나은 냄새지만..


“욱..”


킁킁. 그냥 팬에 굽는 것 보단 나은지 오븐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대던 후거는 갑자기 올라오는 토기에 입을 틀어막았어.


“윽..”


아 왜 이러지. 입을 틀어막아도 목구멍이 억지로 벌려지며 게워낼 것 같은 기분에 쇄골 아래를 주먹으로 치는데도 구역질이 계속 나. 윽. 우욱. 쭈그린 몸을 일으키고 급하게 거실로 달아나는데, 이 정도면 거북할 정도로 나는 비린내도 아닌데 왜 구역질을..


“.....”


주방에서 거실로 피신을 오자 좀 나아지는 것 같아. 하지만 구역질이 멈추고 나서도 후거는 괜찮지 못했지.


설마..

설마...


입을 가린 손이 바들바들 떨렸어. 눈앞이 핑 도는 것 같아. 갑자기 그 때가 떠오르고,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니 서 있다가, 전에 임신 테스트기 몇 개를 사둔 게 기억이 나 안방으로 달려갔어. 서랍장을 다 열어보다가 맨 아래 서랍장에서 사둔 임신 테스트기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지. 변기 앞에 서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가 상자에서 테스트기를 꺼내들었어.


테스트 후에 화면에 줄이 뜰 때 까지. 그 오 분 간 지독한 불안감으로 귓가가 멍해질 정도였어. 화장실도 나오지 못하고 변기 위에 테스트기를 뒤집어 놓곤 세수를 세 번이나 했지.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거울 속으로 확인 하곤, 오 분이 아니라 억겁에 가까운 시간을 느끼고 테스트기 쪽으로 손을 뻗었어.


“....”


손에 쥔 채로, 차마 돌려보지 못했지.

본인 몸이라 알아. 이건 분명....


숨을 크게 들이 쉬고 테스트기를 뒤집자, 희망이라도 가질 수 없게 아주 선명하게 빨간색 줄이 두 개가 그어져 있었어. 심장이 발 아래로 쿵, 떨어지는 것 같았지.


“어떡하지....”


불안감은 더 증폭 되고, 후거는 꼭 세상에 뱃속에 있는 생명과 저 하나만 남아있는 것 같아 눈을 일그러뜨렸어. 나 아직 부모 될 자신이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