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 2016. 7. 13. 13:36
명대의 바람으론 청명이 차를 꺾어 모텔로 가길 원했으나, 애초에 그럴 사람은 아니었지. 시야를 흐리게 만드는 비를 뚫고 시간은 좀 더 걸리긴 했으나 결국 명대의 집에 도착하긴 했어.
“집에 가기 싫다.”
차를 세워도 뚱하니 앉아있던 명대가 그리 말하자, 청명은 작게 찌푸리며 헛소리 하지 말고 안전벨트나 풀라고 했어. 교수님 차갑다.. 눈 끝을 매만진 명대가 푸우우 한숨을 꺼뜨리곤 벨트를 풀고 차 문을 열었고, 청명도 명대를 따라 운전석에서 내렸지. 아직도 비가 우박처럼 굵게 내려서 뒷좌석에서 우산을 꺼내들어 펴더니 빠른 걸음으로 돌아와 명대의 머리 위에 우산을 씌웠어. 그 짧은 사이에 명대의 머리칼과 어깨 위가 짙고, 무겁게 빗물에 젖었어.
“자고 가요.”
“빨리 들어가.”
어리광은 요만큼도 안 넘어가. 명대가 계속해서 그의 팔을 붙잡고 자고가라고 설득했지만 청명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매번 고개를 젓고 안 된다고 거절하는데, 그 때 청명이 잠깐 세운 차 옆으로 명대 눈에 익숙한 차 하나가 지나더니 주차장 입구 앞에 멈춰 섰어.
“어어.”
명대의 눈길이 향하는 곳으로 곧 청명의 시선도 그 쪽에 닿았고, 운전자 석에서 먼저 문이 열리더니 우산을 쓴 기사가 빠르게 내려 뒷좌석의 문을 열었지. 까만색 정장을 입은 명대의 누나 명경이 차에서 내리며 대문 앞에 선 둘을 보고는 눈을 크게 뜨며 놀라. 고교수가 여긴... 작게 혼잣말 하던 명경이 이내 웃음을 터뜨리고 대문 쪽으로 걸었어. 우산을 씌워주던 기사도 뒤를 따랐지.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에요, 고교수. 명대랑 같이 퇴근하던 중이었어요?”
“...예.”
명경은 밝게 웃으며 청명을 반겨줬으나 청명은 좀 민망해하는 기색이었지. 명경과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자꾸만 다른 곳으로 눈이 흘렀어. 마음으론 빨리 이 곳을 벗어나고 싶은데 자꾸만 명경이 말을 걸어.
“이왕 이렇게 여기까지 온 거 저녁 들고 가요. 지금 딱 저녁시간인데.”
“아니 괜찮습..”
“맞아요. 교수님. 저녁 먹고 가요.”
“오늘 명루랑 아성이도 없는데 명대랑 나만 먹기가 좀 그러니까 같이 들어요.”
“괜찮...”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고개를 젓던 청명은, 끝내 명경의 끈질긴 저녁 식사 초대에 버티질 못하고 승낙했어. 그럼.. 저녁만 하고 가겠습니다. 영 내키지 않는 얼굴로, 흡사 전쟁터에라도 끌려가는 듯한 얼굴을 했지. 아니.. 청명이라면 전쟁터를 훨씬 반겼겠지만.
덕분에 명대는 신났어. 누나가 나타난 덕에 고청명이 집에 들어왔으니까. 내가 들어가자고 할 때는 정색하고 거절하더니 누나가 몇 번 저녁하자니까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알겠다고 하는 거 봐. 조금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결과가 좋으니 좋게 생각하기로 했어.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거실에 앉은 청명은 면접 보는 사람 마냥 굳은 자세로 뻣뻣하게 앉아있었지.
“그러고 보니 자주 보긴 했어도 명공관에 온 건 처음이죠?”
“예...”
“우리 명대랑은...”
“....”
“내가 말했잖아 누나. 나한테 안 넘어올 사람이 없다니까.”
청명이 그렇게 무서워하던 명대와의 관계 이야기가 나오자 꾹 다물려있던 턱이 꿈틀거렸어. 눈앞이 아득했지. 청명의 옆에 꼭 달라붙은 명대가 잔뜩 들뜬 목소리로 하는 말에 명경은 코웃음을 치며 명대를 나무랐지.
“네가 넘어오게 한 거야, 네가 애걸복걸한 거야?”
“넘어온 거지. 날 보면 몰라?”
“글쎄... 그래도 너 고교수랑 마음 맞은 이후로 학교 꼬박꼬박 다니니 누나는 좋다.”
당사자들은 좋을지 몰라도 이 이야기를 듣는 청명은 마음이 불편한 걸 넘어 속까지 좋지 않아. 저녁 차리는 중이라는데 밥은 소화시킬 수 있을까. 이태리에서 수입해온 푹신한 가죽소파에 앉은 그는 수천에 호가하는 소파가 아니라,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았어. 명경이 명대에게 연애하니 말 잘 듣는 것도 좋고 밝아보여서 좋다고 하는 말에 명대가 어깨를 으쓱이는 것 조차 그에겐 불편했지. 아. 여긴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데.. 분명 명대는 성인이고 그도 성인이었으나 차마 명대와 한참 나이가 나는, 어머니에 가까운 누나 앞에서는 도통 당당해질 수가 없어. 죄인이 된 것 마냥 좌불안석이던 와중에, 저녁식사를 드시러 오라는 사용인에 말에 드디어 가시방석에서 엉덩이를 뗄 수 있었지.
식탁에 앉을 때도 굳이 청명의 옆자리를 고수한 턱에 누나한테 혼났지만 상관없어.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은 적은 있어도 정말로 명대의 집에서 나란히 앉아 밥 먹은 적은 없어서 명대 스스로도 들뜬 마음을 주체하질 못했어. 평소엔 잘 먹지 않았을 가지요리에도 젓가락이 쑥쑥 가고, 코로 허밍을 해대는 터라 또 한 번 더 혼났지. 누나의 잔소리에 삐죽 입이 튀어나오는데, 옆자리에 앉은 청명이 힐끗 명대를 쳐다보자 툭 튀어 나왔던 입이 쏙 들어가. 흔들흔들 하던 다리도 얌전히 모으고 다시 정갈하게 밥을 먹는 척을 했어. 그리고 짜기라도 한 것처럼 때 마침 명루와 아성이 퇴근해 명공관에 도착했지.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손님이 왔다는 말에 둘 다 다이닝룸으로 먼저 들어왔는데, 거기서 명대 옆에 떡하니 자리 잡은 청명에 명루가 아연실색을 했어. 명경이 그걸 보고 꾸짖었지.
“넌 손님 보고 인사도 안하니?”
“....반갑습니다. 명대 큰형입니다.”
아성이나 명루나, 억지로 인사를 하긴 하는데 둘 다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아. 청명도 자기에게 닿는 따끔따끔한 시선을 느끼고 인사하고는, 다시 의자가 가시방석이 됐어. 명대와 청명 맞은편에 앉은 두 사람은 제 몫의 밥그릇이 앞에 놓아져도 수저를 들 생각이 없고 청명만 뚫어져라 쳐다봤지. 그 시선을 감내하고 억지로 손을 놀리고 있긴 하지만, 고작 밥그릇에 쌓인 밥의 절반을 겨우 먹었는데도 목구멍까지 음식이 차 있는 것 같아 억지로 넘기기 위해 물 잔을 찾았어. 명대 옆쪽에 물 잔이 있는 걸 보고 손을 뻗으려니 명대가 먼저 물 잔을 쥐고는 그에게 내밀었지. 자연스럽게 그 물 잔을 받아드는데, 명루와 아성의 표정이 경악으로 치달았어. 쟤가 물 잔을 들어 준다는 게 말이 돼? 자기랑 더 가까이 있는데도 형들한테 물 내놓으라고 떼쓰는 놈이. 그리고 명대의 두 형의 머릿속에서 어쩌면 명대에겐 [고청명>>>>>형들] 이라는 애정공식이 성립 된 걸까 표정은 점점 굳어갔지.
심각한 얼굴을 한 형님들과 달리, 명경은 식사를 하는 청명을 흐뭇한 얼굴로 보고 있었어. 역시 높은 집안 자제라 그런지 식사 예절도 바르고 가리는 거 없이 잘 먹고.. 원래부터 사람이 괜찮은 진 알고 있었지만. 명대보다 나이가 많은 게 좀 흠이긴 한데 다른 장점이 그 단점을 모두 상쇄 시키니까 괜찮아. 무엇보다 명대가 저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반대를 하겠어.. 거기다 명대의 생명에 은인이고, 또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에게 명대 소식을 가끔씩 알려줬던 명경만은 청명의 마음을 조금 알고 있었어.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아, 맞아. 누나. 나 저번 주에 교수님이랑 데이트 했었어.”
“뭐??”
데이트 이야기에 청명이 수저를 꽉 쥐며 멈칫거렸어. 명루가 데이트 이야기에 크게 되묻자마자 명경의 따끔한 손이 등짝에 닿았지. 쫘악- 따가운 소리를 내며 등을 얻어맞은 명루가 눈을 가리며 고통에 몸부림 쳤지. 덕분에 명대의 데이트 이야기가 멎긴 했지만... 그 말이 나온 이후부터 맞은편의 두 형님들이 더 사나운 눈으로 청명을 노려보기 시작한 터라 대역 죄인을 보는 듯한 눈빛에 도저히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질 않아 다 먹지도 못하고 수저를 내리려 했더니, 명경이 아프냐고 걱정하는 바람에 아니라고 억지로 남은 밥을 입 안으로 우겨 넣었어.
겨우겨우 밥 한 그릇을 해치우고 이제 가려 했더니 명대가 붙잡았지. 명대야, 나 집에... 말을 다 잇지도 못하고 후궁을 보여주겠다는 명대의 손에 끌려갔어. 명경만 명대가 밝아 보이니 집안이 밝아졌다고 손뼉을 치고 웃었고 명루와 아성은 아연실색을 하더니 청명과 명대가 위층으로 올라가 보이지 않자 바로 명경에게 항의를 해.
“저건 좀 아니잖아요. 누님.”
“뭐가 아니야?”
“집에...”
“집에 데려와서 인사하니까 더 낫지, 뭘 그러니?”
“나이차이가 너무 많이 나요. 누님도 아시잖아요.”
“듣자하니 요새 띠동갑이 기본이라더라. 너도 젊은 애들 유행 좀 파악을 해.”
누님. 그게 유행을 하는 게 무슨 상관인데요! 당황한 명루가 명경을 붙잡았으나 명경은 자긴 좀 쉬어야겠다며 손 부채질을 하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어. 툭 닫히는 문에 얼빠진 표정을 한 명루는, 집안에서 오로지 한명, 아성만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같았지. 하지만 아성도 명루가 위층에 올라가는 건 바라지 않는지 계단으로 향하는 명루를 붙잡았어.
“하...”
알아. 명대에게 고청명보다 더 나은 상대가 생길 일은 극히 드물다는 거. 고청명이 명대에 비해 나이가 훨씬 많긴 하지만, 사람 자체나 집안으로 보다 꿇릴 게 없었지. 하지만 명대는 아직 스무 살인데. 하... 명루가 보기엔 아직도 벼락 치는 날, 곰 인형이나 질질 끌고 다니는 어린애 같아서 마음이 안 놓여. 마음은 자꾸 2층으로 흐르지만 그도 끝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어.
***
“짠. 어때요. 생각보다 깨끗하죠.”
“네가 치우는 거야?”
“그럴 리가.”
깨끗하다고 자랑해놓곤 자기가 치운 게 아니래.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당당한 모습에 그가 기가 차다는 듯 웃었어. 청명이 비웃든 말든 감정적으로 업 되어있는 명대는 혼자 사용하는 더블베드의 베개 옆에 고이 앉아계신 회색 곰 인형을 가리켰어. 어때요? 침대에 걸터앉아 인형을 끌어안으며 묻는데, 대답 않은 그는 헛기침만 하며 고개를 돌렸어. 등을 돌린 그의 귀 끝이 빨개진 게 귀여워서 끌어안은 곰 인형이 터질듯 힘을 주다가 겨우 참고 인형은 제자리에 그대로 두고 아무것도 없는 벽지나 뚫어지게 감상하고 있는 청명의 손을 잡아 옆방으로 이끌었지. 창고로 쓰고 있는 명대의 인형 방 말이야.
명대에게 인형 방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냥 방에 곰 인형들 몰아넣은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아예 벽에 장식장을 만들어놨어. 먼지가 쌓이지 않게 유리창까지 나 있는 장식장 안에는 청명이 선물한 곰 인형들만 크기별로 차례차례 전시 되어있었어. 매번 생일 선물로 인형을 보내기 며칠 전부터 무슨 인형을 보내야하나 그 생각만 머리에 들어차 몇날며칠을 고민해서 보낸 인형이니 하나하나 다 기억해. 그걸 보니 좀 전에 벌겋게 달아올랐던 귀를 넘어 목덜미, 얼굴까지 시뻘겋게 물들이곤 장식장 쪽으론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어. 작년에 받은 사람 절반만한 크기의 커다란 곰은 안에 들어가지 않는지 방구석에 얌전히 앉아있었지. 대체 어디에 시선을 줘야할지 몰라서 그가 정처 없이 시선을 이동시키자, 그 쑥스러워하는 반응이 귀여워 명대가 입술을 안쪽으로 말며 웃었어.
“왜 보내는 사람 이름 안 바꿨어요?”
대뜸 물으며 그의 허리를 껴안아. 결국 명대에게서 그 이야기가 나오자 청명이 한숨처럼 웃었지. 기억 안 나. 모르는 말인데.
“모르는 척 하지 말고요. 왜 몇 년 전부터 이름 안 바꾸고 보냈어요?”
“...그냥.”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하더니, 방법이 없자 그냥이라고 퉁쳐 버렸어. 하지만 거기에 왠지 많은 의미와 말들이 담겨있는 거 같아서, 더 자세한 대답을 요구하지 않고 청명의 어깨에 눈을 파묻은 채로 큭큭 웃었어. 동그란 두상을 내려다보던 그는 명대를 마주 안으며 살짝 열려있던 방문을 닫고는, 명대를 그 옆의 벽으로 부드럽게 밀치며 입술을 겹쳤어. 말캉한 입술이 닿고 다리끼리도 서로 엇갈렸지. 입술을 벌린 명대는 붙잡고 있던 그의 허리를 매만지다 손을 위로 올려 어깨와 그 아래 팔뚝을 쓸어내렸어. 잠깐 떨어졌던 입술은 명대에게 숨 쉴 시간을 주곤 다시금 겹쳐지고 명대도 목을 조금 더 꺾으며 청명의 등을 넓게 어루만졌어. 자켓을 벗어 얇은 와이셔츠 위로 도드라지는 날개 뼈와 움푹 파인 척추 위를 손가락으로 매만지다 더 아래쪽으로 내려와 허리, 그 밑에 장골을 건드리듯 스치곤 사타구니로 손이 닿았지. 그 때 청명이 명대의 어깨를 붙잡은 채로 뒤로 훅 빠져나왔어. 가는 은실이 끊어지고, 손등으로 입술을 훔친 그가 짙은 눈썹을 들어 올린 채로 말했어.
“..그만.”
“나 미성년자 아니에요.”
“알아. 근데 난 아직 단계가 필요하다고 봐.”
“무슨 단계? 우리 만난 지 이년 넘었어요.”
“만나기로 한 진 한 달도 안 됐어.”
“난 교수님 보면 만지고 싶고 키스하고 싶고 섹스하고 싶어요.”
걸리는 것 없이 나온 명대의 말에 청명의 표정이 삐끗해. 마치 못 들은 걸 들은 모양새였지. 그 표정을 보니, 아직도 고청명이 자길 애 취급하고 있다는 게 실감 되어 명대가 잔뜩 볼을 부풀렸다 푸우 터뜨렸어.
후거한테 란제리를 사라고 할 게 아니라 내가 사야했어. 고청명 성격으로 봐서 한 달째는 손잡기, 두 달째는 껴안기, 세 달째 뽀뽀.. 그래.. 네 달치를 한 번에 뽑아냈으니 이제 사 개월은 기다리라는 건가. 하지만 명대는 내뱉은 대로, 청명을 보면 키스하고 싶고 자고 싶어. 맨살을 만지고 싶은데 어떻게 참으란 말이야.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실제로 겪으니 불쾌한 기분만 남아 뚱한 얼굴로 인형 방을 나가 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점프하듯 엎드려 누웠어. 청명이 뒤따라 들어왔지.
“명대. 명대야.”
그의 부름에도 대답 하지 않고 베개 옆의 곰 인형만 쥐더니 주먹으로 곰 인형 배를 쿵쿵 때려. 그 모습을 본 청명은 마치 제가 맞는 것 마냥 얼굴을 잔뜩 찌푸리더니 명대 옆에 걸터앉아 손에서 폭행당하던 곰 인형을 구해냈어.
“줬으면서 왜 뺏어요.”
“껴안고 놀라고 준거지 때리라고 준 거 아냐.”
“고청명교수라고 생각하면서 때리고 있으니까 그냥 줘요.”
“.....”
그럼 더더욱 못 주지. 아예 침대 밑으로 인형을 내려버리자 눈앞에서 사라진 회색 곰돌이에 눈을 삐죽하게 뜨며 말했어.
“교수님은 나 보면 만지고 싶지 않아요?”
“...나도 그래.”
명대의 물음에 조금 망설였던 청명은 눈썹을 들썩이며 대답했지. 하지만 동의하는 대답을 해도 영.. 성에 안 차.
“근데 왜 빼요.”
“단계가 필요하다니까.”
“단계는 무슨. 한꺼번에 밟아야지.”
자동차 속도는 20km 겨우 내는 주제에, 한 번에 밟아야한다고 말한 명대가 자신의 셔츠 단추를 토독, 토독 풀어냈어. 곧이어 셔츠가 벌어져 움푹 파인 쇄골이 드러나고 네 번째 단추를 풀기 전에 그가 단추를 풀어내는 명대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쳤어. 청명의 손에 명대의 손이 완전히 감춰지고, 단추를 꾹 쥔 손에 힘도 빠졌지. 그는 꾹 다물린 명대의 턱 끝에 입 맞추고, 조금 끓는 듯한 목소리로 “천천히 하자.” 하고 말하곤 달라붙은 입술에 키스했어.
***
자고 가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명대를 두고 여전히 뾰족한 눈을 한 형님들과 누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어. 아버지는 친구 분들과 골프여행을 가신지라 집에 없으셨지. 평소보다 늦은 청명이 별일이라 친구라도 만나고 왔냐는 물음에 청명이 입을 달싹였어. 사실대로 말해야하나 말아야하나. 하지만 누나가 정말 모를 것 같진 않아 결국 사실대로 말했지.
“명공관에서 저녁 먹고 왔어.”
머리와 어깨에 묻은 비를 툭툭 털며 신발을 벗었어. 예상대로 누나는 눈을 크게 굴리더니 허리에 손을 올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려는 청명을 붙잡았어.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말 해.”
“...명대 걔가 너 좋아하는 건 예전부터 알았어.”
명대와 청명을 아는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지. 청명은 그냥 가라앉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어. 찌푸린 누나의 표정을 봐서 절대 좋은 이야기가 나오진 않을 것 같아서.
“네가 그렇게 피해 다니다가 이제 와서 만나준다는 거, 그냥 사귀다 말려는 생각 아닌 거 알아. 너 결혼까지 생각하고 만나는 거잖아.”
“누나, 명대 걔 아직 어려.”
“어린 게 문제가 아니라 네가 결혼생각이 있다는 거잖아. 틀려? 사귀는 거 까진 뭐라고 안 해. 네 마음이니까. 하지만 결혼엔 좀 회의적이다. 아버지는 모르겠지만, 난 명대 가족으로 받아들이긴 좀 그래. 걜 보고 멀쩡한 표정 못 짓겠어.”
“명대 잘못 아니라는 거 알잖아.”
여전히 현관 앞에 우뚝 선 청명을 보며 한숨짓더니 소파에 앉은 그녀는 소파 등에 뒷목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떴어. 청명이가 듣기 싫어할 건 알지만. 그래. 시누이 짓하려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반대하는 와중에도 동생의 꿈을 도와 준 유일한 사람이 금운이야. 친척들이고 가족들이고 청명이 굳이 탄탄대로를 눈앞에 두고 위험하고 힘든 군인을 하려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지. 아버지가 특히나 완강하셨어. 금운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청명은 사관학교에 원서조차 내지 못했을 거야. 어쨌든, 그렇게 힘들게 드디어 학교에 들어가 원하던 생활을 하고 곧 군인이 코앞이었는데 덧없이 무너져 숨죽여 울던 동생을 아니 명대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아. 물론. 명대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아직도 꾸준하게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는 청명을 보면...
“들어가서 쉬어. 늦었다.”
더 말을 꺼내다간 둘 사이도 나빠질 것 같아 결국 이야기를 끝마쳤어. 손짓한 금운이 자신의 방으로 향했고, 청명도 방문 안으로 사라지는 누나의 뒷모습을 보곤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지. 한숨을 푹푹 꺼뜨리며 방에 들어가 자켓을 옷걸이에 걸고 침대에 앉아 뻐근한 눈을 손가락 마디로 꾹꾹 눌렀어. 감은 눈 위로 새초롬히 웃는 명대의 얼굴이 잔상처럼 스쳐지나갔지. 조금만 참고 견디면 된다고 생각했어. 명대를 잊는 거나, 명대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숨기거나. 하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결국 여기까지 왔는데. 맞아. 누나 말대로, 청명이 명대를 받아들인 이상 대충 사귀다 말려는 생각은 없었어. 명대가 원해서 헤어진다면 모르겠지만. 하지만 결혼까진 아직 먼 이야기고, 당장 명대와 키스하는 것 그 이상도 죄책감에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데.. 결혼이라니.
“하..”
꾹꾹 누른 눈을 감았다 떠. 흐릿한 눈앞이 점점 제대로 된 형태로 변해갈 때, 주머니에 든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지. 꺼내 보자 명대에게 문자가 와서 바로 잠금을 풀었더니 사진이 하나 도착해서 열어봤더니 아까 명대가 열심히 패던 회색 곰 인형과, 옆방에서 가져왔는지 비슷한 크기의 하얀색 곰 인형을 한꺼번에 끌어안고 찍은 사진이야. 밑에 적혀있는 글이 더 가관이었지.
[후궁 두 개랑 화끈한 밤 보낼 예정이에요.]
두 명도 아니고 두 개야. 화끈한 밤을 보낼 예정이라더니 사진에 찍힌 표정은 뚱하기 그지없지. 픽 웃은 그는 휴대폰 화면에 뜬 불퉁한 명대의 얼굴을 엄지로 슥슥 만지다 다시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어. 너무 어려.
***
하루 종일 건화를 손끝으로 부린 후거는 다음날도 엄살을 피며 조금도 못 움직이겠다. 학교도 못가겠다 아파서 하루 더 쉬어야겠다고 헐리웃 액션을 펼쳤으나 아픈 연기에는 재주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엄살인 걸 들켜버렸어. 결국 건화에게 붙잡혀 강제로 씻겨 지고, 먹여지고, 옷 입혀졌지. 그 와중에 건화가 아무거나 주워들어 입히는 바람에 후거가 싫다고 땡깡 부려서 다시 갈아입긴 했지만.
학교에 도착한 후거는 제일 먼저 명대부터 찾았어. 전화 걸어서 어디 있냐고 불러내니 집이래. 아 씨. 너 왜 학교 안 오냐. 오전수업 없대. 거기서 후거는 아주 약간 머리를 굴렸어. 난 아직 아프고, 엉덩이 진짜 너무 아파. 학교 의자는 딱딱하니까 거기에 앉으면 안 돼. 그러니까 난 수업 받을 컨디션이 안 되니까 하루 더 쉬어도 돼. 맞아. 혼자서 납득을 끝내고 명대에게 물었어.
“나 너네 집에 놀러가도 돼?”
-학교 안 가냐?
“아파서 못 가.”
-지랄... 나도 학교 안 가 오늘.
“왜 안 가? 고청명한테 다 이른다.”
-죽는다, 진짜.. 주소 보내 줄 테니까 택시타고 와. 택시비 줄게.
이야.. 역시 부잣집 친구가 최고네. 과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던 후거는 택시비 준다는 명대의 말에 그대로 턴해서 밖으로 빠져나왔어.
“저번에 본 집이랑 다르네..”
“그 집은 고청명집이고.”
“뭐? 너 왜 그 주소 알려준 건데 그럼?”
“몰라 그땐 그게 생각났어.”
분명 저번에 명대네 집에 가봤다고 생각했는데 으리으리한 건 같지만 위치도 다르고 집도 달라서 의아했는데 교수님 집이었다니. 본의 아니게 교수님 댁에도 가봤었네.. 부잣집 아들이란 이야긴 들었지만 그 정도로 부자일 준 몰랐네. 새삼 명대나 고청명이나 건화나 그 사세라는 걸 떠올리며 어깨를 움츠렸어. 아니야.. 후거... 너도 신분 상승한 거야.. 주눅 들지 마...
겉으로만 봐도 큰데 안에 들어가니 더 크고 화려해. 벽지부터가 다른 것 같아 신기한 눈으로 안을 구경하다가 명대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 명대 방에 들어갔는데, 다른 것 보다 침대 위에 인형부터 눈에 들어왔어.
“초딩.”
“닥쳐. 고청명이 준 거니까.”
초딩이라 놀리자 기분이 팍 상한 듯 명대가 침대에 인형을 끌어안고 욕질을 했지.
옷도 안 갈아입어 잠옷 차림으로 친구를 맞이하는 것부터가 잘못 된 거야. 어? 내가 오면 목욕 재개하고 반겨야지. 명대 방안도 쭉 둘러보는데 생각보다 평범하네. 들고 있던 가방은 책상 위에 올리고 의자를 질질 끌어 앉았어.
“너 왜 학교 안 가는데?”
“고청명한테 화나서 얼굴 볼 기분 아니야.”
“오늘 교수님 수업 있어?”
“전공. 안 들을 거야.”
웬 일이래. 고청명 수업은 꼭 듣던 놈이. 이제 둘이 사귀니까 깨 볶을 때 아닌가. 의자위에 발을 올려 몸을 웅크리고 쳐다봤지. 보니까 명대 얼굴에 심술보가 그득그득하게 붙어있어. 어제 둘이 싸웠나? 명대 만나면 때려주려고 여기까지 온 건데. 저러니까 때릴 수가 없네. 운도 좋은 새끼..
“둘이 싸웠어?”
“아니. 근데 고청명이 키스 이상을 안 하려고 해.”
“둘이 사귄지 얼마 됐다고...”
“좋아한지 이년 넘었거든. 내가 보기엔 사귄지 며칠의 문제가 아니라 무슨 내가 스물다섯 살 넘어야 잘 것 같은 기분이야.”
“설마...”
설마라고 대답은 했지만, 고청명 교수 성격에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은 것 같아. 명대 새끼가 걱정할 만도 하네. 자기 일을 돌이켜보니.. 할 말이 없다.. 후거 경우엔 건화랑 마음이 맞고 얼마 안 돼서 잤어.. 생각해보니까 자기가 그 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 그 땐 그냥 곽건화랑 그거 하고 싶다는 생각만 머리에 차서..
“방법이 필요해.”
“무슨 방법.”
“고청명 쓰러뜨릴 방법. 내가 란제리를 입어볼까?”
“그거 비추천이야. 안 돼. 버려..”
진짜 비추야. 다신 안 입어.
란제리 이야기에 후거의 안색이 창백해졌어. 이틀째지만 아직도 그 때 생각하면 질려... 한 일주일은 그거 안 해도 될 것 같아. 진짜, 정말로... 아 생각도 싫다...
후거가 과하게 반응하며 고개를 젓자 명대의 표정도 미묘해졌지. 후거가 반대하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영 효과가 안 좋을 것 같아. 고청명 앞에서 야한 속옷 입고 나타나면, 분명 미간 팍 찌푸리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하고 말하고는 어디서 이불이나 옷 가져와서 입혀줄게 분명해. 진짜 요만큼도 흥분 안 할 걸? 하. 내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다. 저게 부처지 사람이야?
어? 얼굴 비슷한 후거 남편은 하루 종일 후거 괴롭혀 대서 애가 저렇게 치를 떨 정도인데, 어떻게 떠먹여준다는데 안 먹을 수가 있어.
“고청명 저 인간을 진짜 어떻게 해야 하냐...”
사귀기만 하면 탄탄대로일 줄 알았는데 이런 장벽이 있다니.
“으으으...”
인형 끌어안고 침대 위를 구르자 후거는 아랫입술을 내민 채로 눈을 가늘게 떴어. 남의 커플 일에 참견하는 거 별로인 건 아는데.. 내가 해답을 알려주지 뭐.
“밀당을 해 밀당을.”
“밀당을 왜 해. 당기기만해도 바빠 죽겠는데.”
구르다 멈춰선 명대가 베개 위로 목을 쭉 빼며 말했어. 그에 후거가 혀를 찼지. 네가 그러니까 교수님이 그렇게 안심하고 구는 거지! 타박하는 후거의 말에 명대가 뭐? 하고 되물어.
“넌 맨날 교수님이랑 자고 싶고 같이 있고 싶어 하니까 교수님이 딱히 너한테 매달리지 않는 거야. 교수님이 너한테 매달려야 네가 원하는 대로 방향이 흐르지.”
고청명이 나한테 매달린다고...?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뜬 명대는, 머릿속에서 명대를 끌어안고 제발, 제발 삼십분만 나랑 더 있어줘. 하고 부탁하는 청명을 떠올렸어. 평소엔 딱딱하게 다물렸던 입술을 명대의 뺨에 문지르며 연신 명대의 온 몸을 어루만지고.. 제발 조금만 더 자신과 있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하는... 고청명...
“그거 쩐다.”
“미친. 너 무슨 생각했어.”
침대에 누워 초점 없는 눈으로 망상에 빠졌던 명대가 벌떡 일어나 소리치자 놀란 후거가 의자에 앉은 채로 뒷걸음질 쳤어. 식겁했네..!
“밀당은 어떻게 하는 건데?”
“뭐.. 연락 안하고.. 문자와도 씹고... 그냥 네가 먼저 연락을 안 하면 돼.”
문제는 후거도 밀당을 해본 적이 없다는 거지.
“내가 연락 안 해서 고청명도 나한테 연락 안 하면..?”
“기다려야해.”
“얼마나?”
“올 때 까지?”
“평생 안 오면?”
“....설마..”
예전 같으면 몰라도 지금은 둘이 사귀는데 설마 평생 연락이 안 올까봐. 조금 겁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렇진 않을 거라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어. 괜찮아. 그러진 않을 걸? 삼일 내로 연락오지 않을까?
“고청명이 먼저 연락하는 거 잘 없는데...”
“그러니까 밀당을 해야지. 언제까지 너만 매달릴 거야? 오늘부터 하는 거야. 먼저 아―무 연락 하지 마.”
“...오늘부터? 내일부터 하면 안 돼? 이따 저녁에 고청명이랑 통화하려고 했는데..”
“아, 좀 시키는 대로 해.”
후거의 이야기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경청해 듣던 명대는 지금부터 시작하라는 말에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어. 이따 저녁에.. 고청명한테 주말에 데이트하자고 하려고 했는데. 지금부터라니. 맙소사. 오늘 눈뜨고 고청명이랑 문자랑 전화 한 번도 안 했단 말이야.
“오늘부터 시작해. 너 연락 없으면 교수님도 똥줄 좀 타시겠지.”
“고청명한테 그런 상스러운 단어 쓰지 마. 아, 아 근데 그냥 내일부터 하면 안 될까. 그리고 나 사실 고청명이랑 전화 안 하면 죽는 병에 걸렸어.”
며칠 전부터 걸렸는데, 아마 못 고칠 거야. 이어진 명대의 말에 후거가 웃는 낯을 구기며 대답했어.
“그럼 그냥 죽어.”
“진짜 너무하네.”
어제 열심히 때려줬던 회색 곰 인형의 통통한 배를 매만지며 삐진 것처럼 말했지. 명대는 다시 침대 위로 드러누우며 “으아아아아!” 신음하곤 인형으로 얼굴을 감춰버렸어.
“문자 하나만.”
“안 된다니까.”
“밀기 하다가 고청명이 완전히 밀리면 어떡해?”
“...완전히 밀리기 전에 다시 당겨야겠지?”
“너 별로 도움 안 되는 것 같아.”
“닥쳐.”
“진짜 밀당이 효과 있어? 없을 것 같아. 고청명은 내가 연락 안 해도 안 한 줄도 모를 걸? 확실해...”
나쁜 놈. 나만 너무 좋아하는 거 같아. 생각해보니 열이 뻗쳐서, 소중하게 배를 만져줬던 회색 곰 인형을 다시 마구마구 찌그러뜨렸지. 그걸 지켜보는 후거의 표정만 별로 안 좋았어. 쟤 고청명 좋아하는 거 맞아? 왜 선물 받았다는 걸 저렇게 만들어. 그나저나 교수님이 쟤한테 곰 인형을 사줬다는 게 더 충격이다. 안 어울려.
한편, 명대가 밀당이 안 먹힐 것 같다는 걱정은 전혀 쓸 데 없는 생각이었어. 수업에 들어간 청명은 비어있는 명대 자리를 확인하곤 출석을 부르는 것도 깜빡했지. 늘 저기에 앉았었는데. 혹시나 오늘은 다른 자리에 앉은 걸까봐 제일 앞자리에서 뒷자리 까지 쭉 훑는데 없어. 명대가 학교를 빠진 적은 많아도 자신의 수업을 안 들은 적은 없었는데. 아프다는 이야기도 없었고, 어제도 아픈 기색은 없었는데 왜 안 왔지. 늦잠 잔건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두고 잠깐 확인해도 명대에게서 온 연락이 없어. 긴 속눈썹에 가려진 청명의 눈동자가 강력한 기세로 동공 지진을 일으키더니 오늘 수업하기로 한 내용이 뭔지도 잊었어.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펜을 들고 멍하니 5초간 침묵한 청명은, 출석 오늘은 안 부르시냐는 맨 앞자리 학생의 물음에 “아. 그래요. 출석.” 하고는 학생들 명단이 적힌 파일이 아니라 수업 내용을 적은 파일을 들어 눈으로 읽고 있었어.
“교수님?”
“....아.”
그를 부르는 소리에 겨우 다시 정신을 차리고 출석부를 펴는데, 전에 명대가 나타나지 않았던 일주일을 떠올리며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떴지. 앞이 어질한 것 같아. 무슨 일이길래 안 나오고 연락도 없어...
화이트보드 펜을 든 고교수님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지. 효과가 너무 좋아서 탈인데 말이야.
'완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화후거] 신혼인 두 사람 보고싶다 31 (0) | 2016.08.12 |
---|---|
[건화후거] 신혼인 두 사람 보고싶다 30 (0) | 2016.07.13 |
[건화후거] 신혼인 두 사람 보고싶다 28 (0) | 2016.07.13 |
[건화후거] 신혼인 두 사람 보고싶다 27 (0) | 2016.07.13 |
[건화후거] 신혼인 두 사람 보고싶다 26 (0) | 2016.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