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차여차
곽호 썰, 소설 올리는 블로그 @tarack_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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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재 완 결 단 편 기 타 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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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왜 누군가를 좋아해야하는 지 모르겠다. 굳이 누군가를 사귀면서 귀찮게 신경 써야하고, 매일 만나고 통화해야하는 이유도 모르겠다. 17살. 한창 연애 이야기에 예민할 시기에, 건화는 친구들이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딱히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학교를 마치고 농구 하다 집에 들어오면 저녁이고, 쉬고 놀기에 바쁜데 여자친구에게 그 짧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해야하는 지 이유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으로 여자친구를 사귀는 친구들 틈 속에서 건화는 내내 혼자였다. 외롭다고 느끼지도, 부럽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가끔 난 왜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거지. 혹시 아예 그런 감정이 안 드는 것 아닐까 하고 걱정해본 적은 있었지만 열일곱은 어린 나이고 앞으로 남은 시간에 좋아하는 상대가 나타날 거란 생각에 그 걱정도 금방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생각한 그대로 그 남은 시간에, 건화에게 사랑이 찾아왔는데, 이게 참 문제라면 문제였다.


"형은 저기 고등학교 다녀?"

"어. 우리 같은 학교네."

"응. 바로 옆이다. 그치?"


건화의 가슴팍에 다다른 후거는 뽀얀 얼굴을 한 중학생이었다. 초등학교를 갓졸업한 녀석이라 역시 애티는 남아있었는데, 그래도 교복을 입으니 중학생 처럼은 보인다. 어차피 남자놈들이란 16살과 17살의 간극이 큰 법이다. 지금은 이렇게 아기같은 후거도 고등학교에 들어서면 남자티가 나겠지.


욕과 음담패설을 나누는 친구들 사이에서, 고운 말과 상냥한 어투를 쓰는 후거와 있으면 가끔은 후거가 여자애처럼 느껴졌다. 예쁘장하긴 하지만 후거는 여자로 착각할만큼 선이 여리진 않았고, 단순히 어려서 동글동글한 것 뿐이지만, 그냥 그랬다. 가끔 길을 지나다가 노점판매상에서 분홍색 핀을 파는 걸 보면, 사서 후거 머리에 꽂아주면 후거가 무슨 반응을 할까 궁금해졌다. 자기도 남자라고 화를 낼까. 아니면 후거는 착하니까 머리에 꽂게는 해줄까.


건화의 친구들은 건화가 자기들과 노는 것 대신, 그 좋아하는 농구 대신 세살 어린 이웃동생을 보러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실은 건화 스스로도 이해를 못하는데 어떻게 남이 이해를 할까. 머릿속에 농구 밖에 없던 건화는, 이제 그 농구의 반절을 후거에게 내어줬다. 형, 이거 나 주는 거야? 느리고 흘리는 어투로 말하던 후거의 얼굴이 안 잊히고, 조막만한 손으로 건화가 내민 타르트를 받는 후거의 모습도.


처음에는 그저 귀여운 동생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했던 건화도 시간이 흐를 수록 제 마음이 아는 동생에 대한 애정보단, 친구들이 여자친구에게 보이는 애정과 더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후거에게 온갖 예쁜 걸 주고 싶고, 더 같이 있고 싶고, 후거의 최우선이 되고싶었다.


그러나 3살의 차이는 작아도,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차이는 컸으며 남자와 남자라는 것은 더 큰 문제였다.


후거는 자랄수록 살이 빠지고 더 남자애 티가 났고, 변성기가 와서 곱던 목소리도 조금은 낮아졌다. 열다섯 겨울의 후거는 맞춘 교복이 작아 새로 맞춰야했고, 열여섯 여름의 후거는 건화와 키가 엇비슷해졌다. 아마 후거가 고등학생이 되면 건화보다 더 커질 수도 있겠지. 문제는 그래도, 후거가 자신의 키를 넘어서도 건화는 후거가 마냥 예뻐보일 것 같았다. 이제 누가봐도 남자인데, 아무리 곱게 말을 써도 다가오는 목소리가 남자의 목소리인데 건화는 그 목소리에 심장이 뛰고, 그리고 밤에는 그 목소리로 아랫도리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처음으로 후거를 가지고 자위했을 때가 열여덟살이었고, 그 때 후거는 막 변성기를 마친 상태였다. 바뀐 목소리에 들려주기 싫다며 말을 않고 우는 후거를 안아 달랬었다.


"후거 괜찮아. 바뀐 목소리도 예뻐."


그러나 건화는 후거의 눈물 속에서, 그의 손바닥에 감기는 후거의 맨살에 침을 삼켰으며, 머릿속으로는 역겨운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날 밤, 후거는 건화와 똑같은 나이로 나타나 건화에게 먼저 입맞췄고, 예쁜 입술로 건화의 성기를 입에 담았다.


새벽에 깬 건화는 이마를 감싸쥐고 스스로를 욕하다가, 젖은 아랫도리를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건화의 더러운 상상 속에서 등장하기엔 후거는 너무 어렸고, 너무 소중했으니까.




"나 너 1학년 때 부터 좋아했어."

"...."


초콜릿과 카드를 건네며 자신감있게 고백한 여자애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윗층 창문에서 다 몰려나와서 지금 이 장면을 구경중이라는 건 굳이 올려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눈 앞의 여자애는 건화도 스쳐본 적 있고, 이름을 들어본 적 있다. 예쁘다고 소문난 애.


"이거 내가 만든 초콜릿이야."

"...."


초콜릿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려온다. 여자애는 꼭 손도 자기 얼굴처럼 예뻤다. 작고, 가늘고, 하얗게 뻗어있었다. 우리 후거도 손 예쁜데. 여자애들보다 더 예쁜데.


"..안 받아줄거야?"

"미안. 나 여자친구 사귈 생각 아직 없어."

"다 보고 있잖아."

"...."

"근데도 거절할 거야?"


목소리는 떨리고, 손은 그보다 더 떨린다. 건화는 착찹한 마음으로 초콜릿을 내려다봤다. 직접 만들었다고.


"초콜릿만 받아도 될까."

"차라리 그래. 이것도 안 받으면 나 완전 창피할테니까."

"미안하다."


건화가 초콜릿을 받아들자, 위 쪽에서 함성이 들렸다. 곽건화 드디어 모쏠 탈출하는 거냐고 시끄럽게 떠드는 와중에, 여자애는 울면서 자리를 떴고, 건화는 손안에 든 초콜릿과 카드를 보며 뒷목을 긁었다. 후거 줄까.




학교에서 소문이 다 났다. 건화가 여자친구를 사겼다고. 그리고 그 소문은 바로 옆 건물에 위치한 중학교 까지 흘렀는데, 후거가 종례를 끝나고 건화의 반에 찾아왔다. 다른 교복과 아직 어린 얼굴에 지나가는 녀석들마다 후거를 힐끔힐끔 쳐다봤고, 후거는 그 시선에도 꿋꿋이 서서 건화를 불러냈다.


"형."

"왜 왔어. 말 할 거 있어?"

"형 여자친구 생겼어?"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걸텐데, 건화는 후거의 그 물음이 괜히 간지럽고 떨리는 것 같아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라고 해야하는데. 후거가 왜 묻는지 궁금해지고, 왜 그 이야기를 듣고 바로 달려온 건지도 모르겠고.


"형 진짜 여자친구 생겼어?"

"어..."

"정말?"

"아니."

"아니야?"


아니라는 말에 후거는 더 커질데도 없이 눈을 크게 뜨며 건화를 본다. 정말? 왜?


"..아직 생각 없어서."

"형 잘생겼는데 왜 여자친구를 안 만들어."


그러자 후거는 건화가 좋아하는 그 손을 들어서 건화의 뺨을 만졌다. 형이 찬 거야?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눈가 근처로 손가락을 가져간다. 건화는 꼭 후거의 손이 닿은 얼굴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 미간을 찌푸렸고, 후거는 제 손이 건화의 눈을 찔렀을까봐 놀라서 손을 거뒀다. 아. 찌푸리지 말 걸.


"아쉽다. 형 여자친구 생겼다 그래서 구경하러 왔는데."

"..뭐가 아쉬워."

"아쉽지. 형 초콜릿 많이 받았지? 나도 엄청 많이 받았어. 누가 더 많이 받았게?"


뒤로 맨 가방을 앞으로 돌려서 가방 안을 열어보이며 말하는데, 가방 안에 책은 없고 초콜릿만 산더미였다. 건화가 그걸 보고 공부 안하냐며 타박하니, 후거는 입을 쭉 내밀며 살풋 웃으며 대답했다.


"형도 맨날 농구만 하면서. 형은 몇 개나 받았어?"

"후거가 더 많이 받았어."

"거짓말. 우리 학교 애들도 형한테 초콜릿 주러 가던데."

"아니야 후거가 더 많이 받았어."


그렇게 말한 건화는 잠깐 후거와 멀어지더니 캐비닛에서 초콜렛 상자 몇개를 가져와서, 아직도 벌어져있는 후거의 가방 속으로 넣었다. 어, 왜?


"나한테 받았으니까 후거가 제일 많이 받은 거야."

"뭐야. 그거 딴 사람한테 받은 거 그냥 나한테 주는 거잖아."


예의가 없어, 형은. 그거 왜 남 주는 거야.


그러면서도 후거는 다시 돌려주지 않았고, 대신 선심쓴다는 듯 계속 들고 있었던 작은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건화는 후거의 흰 손바닥 위에 오른 상자를 보면서, 긴 속눈썹을 깜빡인다.


"뭔데?"

"이건 내가 주는 거."

"어?"

"이거 내가 형 주려고 사서 포장한거야. 누구한테 받은 게 아니라. 줄려면 이런 걸 줘야지."


멀뚱하게 서고만 있는 건화가 답답한지, 후거는 건화의 손을 들어서 그 손 위로 상자를 얹어주며 웃었다. 내 꺼가 제일 맛있을 걸. 여전히 멍하게 반응을 못하는 건화의 얼굴을 보며, 건화의 뺨을 손가락으로 쿡 찌른 후거는 형 공부 열심히 해. 하고 인사하고 가버렸고, 건화는 후거가 손에 쥐어 준 상자를 든 채로 복도에서 계속 서 있다가, 지나가던 선생님에게 걸려 혼이 났다. 그 순간까지도 건화의 손에는 그 상자가 들려있었고, 집에 돌아가는 순간에도 그랬고, 집에 돌아와 자기 전 까지도 그랬다.


한참을 망설이다 리본을 풀고 상자를 열었는데 안에 카드같은 건 없었다. 딱 여섯개 들어있는 초콜렛은 집에서 만든 것 같은 모양이었는데, 단순히 틀에 넣고 초콜릿을 굳힌 것 뿐이라는 걸 아는데도 떨리는 손으로 하나를 집에 입안에 넣었을 때, 건화는 처음으로 음식을 먹으며 울었다. 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구나.

그 전 까진 단 건 입에도 대지 않던 건화는 하루에 한개씩 후거가 준 초콜릿을 입 안에 넣었고, 그 후에는 시치미를 뚝 떼며 단 게 좋으니 초콜릿을 더 만들어달라고 후거에게 요구했다. 어이 없다는 듯 건화를 보던 후거는 그 후로 조금씩 건화에게 디저트를 만들어 바쳤고, 건화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그랬었다.


그리고 열아홉의 끄트머리.


겨울방학 내내 건화는 후거 생각 뿐이었고, 대학에 합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후거는 키도 많이 컸고, 곧 있으면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겠지. 그 사이 후거는 여자친구를 만들었으며, 제일 먼저 건화에게 자랑을 했다. 그날 밤 건화는 조금 울고, 조금 괴로워 하다가 마음을 접으려 노력했다. 아마 후거가 자라서 성인이 되어도,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을 수 있어도 후거의 손을 잡고 설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또한 건화는 아직 스스로 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열아홉이었고, 후거는 세상의 아픈 부분은 모르는 게 나을 열여섯이었으니까.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건화는 처음으로 여자친구를 사겼다. 작년에 발렌타인데이에 그에게 초콜릿을 주며 고백했던 여자아이였다.

건화의 졸업을 축하하러 건화네 집에 놀러왔던 후거는, 여자친구를 사겼다는 건화의 말에 충격적인 얼굴을 했다. 정말...?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지만 건화의 대답은 여전했다.


"어. 예뻐."


그냥 어. 도 아니고 예쁘다는 말도 붙은 그의 말에 적잖이 충격 받은 후거는 건화에게 선물하려고 만들었던 머핀도 떨어뜨리며 입술을 벌렸다. 도톰한 아랫입술은 바들바들 떨리고 어떤한 말도 꺼내지 못한 채 후거의 시선은 건화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건화는 후거의 그 반응에 무어라 말을 해야할지 멍해졌다. 네가 왜 그러는데. 너도 여자친구 있으면서. 왜 그렇게 바람맞은 애인마냥 구는데.


후거의 반응에서 희망을 찾고싶다가도, 여전히 곽건화는 겁쟁이 열아홉이고, 여전히 후거는 어린애인 열여섯이다. 변하는 건 없어.




대학을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게 됐다. 후거는 왜 그렇게 멀리 가는 거냐며 건화를 붙잡았고, 건화는 여자친구가 그 대학에 간다는 걸로 상황을 무마시켰다. 그리고 그 날 처음으로 후거가 욕을 하는 걸 봤는데,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고작 그 딴 이유로 먼 대학을 가는 게 제정신이냐고. 그런 멍청한 인간일 줄 몰랐다며 건화를 쏘아붙이고 가버리는데, 후거를 떨어뜨리려고 한 거짓말이지만 억울하고 화가나서 건화도 한동안은 후거와 말을 붙이지 않았었다. 그렇게 봄은 다가왔고. 건화는 여전히 문을 열어주지 않는 후거의 방 문을 보다가 대학으로 떠났다.


여자친구와는 대학을 입학하며 헤어지게 됐고, 건화는 다시 혼자가 됐다. 여전히 혼자인 게 편했다. 농구부에 들어서 수업 끝나고 농구 좀 하다가 기숙사에 와서 노트북 가지고 놀다 잠들고, 가끔은 친구들과 뒤섞여서 술을 마시러 가고. 건화의 일상은 후거를 몰랐던 열일곱 초반으로 돌아왔고, 몸과 눈에서 멀어지자 후거에 대한 사랑도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보고싶었지만 그것도 반년이 되어가니 그리움도 없어졌다.




방학. 후거를 잊었다고 생각했으나 나름대로 긴장하고 집으로 돌아왔던 건화는 텅 빈 옆집에 허탈한 감각을 느꼈다. 후거가 고등학교를 상희에 붙어 그 근처로 옮겼다는 이야기였다. 거기 간다고 한 적은 없었잖아. 붙었다고 한 적도. 건화는 결국 후거에게 자기는 단순히 그 정도 밖에. 그냥 아는 형 정도 밖에 안된다는 생각에 잊으려 노력했다. 내 휴대폰 번호도 알면서 왜 연락도 안 하고 간 건데. 속으로 후거에대한 온갖 욕을 내뱉으면서,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 날 건화는 아침까지 울었고, 그날 내내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건화가 사회인이 되어 직장을 다닐 때 쯤, 건화는 다시 후거를 만났다. 거실 브라운관 속에서. 건화의 마음 속 첫사랑이었던 후거는 이제 건화 주변 여자들의 첫사랑이 되었고, 이름을 대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오히려 후거보다 이소요라는 이름으로.


더이상 후거는 건화의 눈에만 예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으며, 건화에게만 소중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한참이나 지난 첫사랑을 빼앗기고, 나눠진 것 같아 기분이 나빠진 건화는 일부러 후거가 나온 드라마는 피했고, 인터넷에 후거의 이야기만 나오면 스크롤을 내리기 바빴다. 깨진 사랑이고 마음 한 번 전하지 못해도 건화에겐 나름대로 특별한 추억인데 그게 와장창 부서진 기분이었다. 혼자만의 소중한 감정을 까발려진 기분.


이젠 후거가 아니라 '이소요'는 미워질 것 같은 그 때, 건화는 다시 한 번 후거를 만났다. 브라운관 속도 아니었고, 스크린 속도, 잡지 속도 포스터 속도 아니고 살아 움직이는 후거를.


"...여긴 어떻게..."

"형 부모님 댁에 갔는데 여기 주소 알려주셨어."

"...."

"형은 진짜 어릴 때랑 똑같다. 난 어떤 거 같아?"


마스크와 모자, 선글라스 까지 끼고 중무장한 후거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마스크를 벗으며 웃었다. 선글라스도 벗어내리고.


"응?"

"...."

"일단 나 집 안에 들여보내줘. 팬이 여기까지 따라올 것 같아."


들여보내달라던 후거는 멀뚱하게 서 있는 건화의 옆 빈공간으로 몸을 억지로 밀어넣어서 안으로 들어왔다. 와, 집 좋다. 형 완전 성공했네. 혼자 사는 건화의 집안을 두리번 거리며 구경하는 모습은 수 년만에 만난 아는 동생 치고는 살가운 반응이었다. 후거는 일부러 들뜬 듯 몸을 주체를 못 했고, 말 없이 조용한 건화의 눈치를 보며 소파 위를 손으로 쓸다가 리모컨을 들어 티비를 켰다.


"형 나 드라마 나오는데 알아? 저녁에 이 번호 틀면 나 나오는데..."

"어떻게 알고 왔어."

"응? 아까 말 했잖아."

"아, 그래. 그럼 왜 온 건데?"


냉랭하게 나오는 건화의 목소리에, 후거는 어깨를 조금 움츠리다가 눈끝을 접으며 웃는다.


"그냥 보고싶어서 왔지. 우리 못 본지 오래 됐잖아."

"너 왜 나한테 전화 안했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옛날 이야기에, 후거가 입을 벌렸다 닫는다. 그리고는 뒷머리를 쓸며, 건화를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전화 안 한 건 형도 마찬가지잖아."

"...."

"대학 멀리 갔다고 나랑 전화도 안 할 필요는 없었어."


건화는 그 때, 후거를 잊으려 노력 중이었다. 후거의 연락이 없어도 먼저 걸 생각은 안했다. 그래, 그렇게 보면 건화도 연락 안 한 건 마찬가지지.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최소한 이사 갈 때 정돈..."

"그 때. 전화 했는데 형이 안 받았어."

"언제."

"공중전화에서 해서 아마 기억 못 할 거야."


머뭇거리며 나온 후거의 말에, 건화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뭐? 하고 되묻는다고 한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기가막힌듯 웃은 건화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후거를 본다. 이제 후거는 그 보다 더 컸고, 남자다운 태가 많이 난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곽건화의 눈에는....


"형."

"...."

"형 아직 여자친구 있어?"


아직도 곽건화의 눈에 후거보다 더 예쁜 것은 없었다. 모든 이의 첫사랑이라는 이소요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뺨을 붉히며 조심스럽게 묻는 후거를 보다가, 건화는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후거의 뺨을 잡아당겼다.


"없으면."

"...나도 없는데."


중요한 것을 고백하는 듯 수줍게 대답한 후거는 여전히 주변 녀석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건화는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곱게 모인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겹쳤고, 후거는 두 주먹을 꼭 쥐며 어깨를 떨다가, 건화의 팔 위로 자신의 팔을 올렸다. 이제 둘 다 열여섯도, 열아홉도 아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