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 2016. 7. 13. 13:30
며칠 전부터 명대가 다시 학교를 나오기 시작했어. 놀랍게도 고청명 수업이 없어도 꼬박꼬박 학교를 나왔지. 어제도 봤는데 오늘도 학교에서 명대를 보다니..! 후거는 바로 해가 어디 떠있는지부터 확인하고 당장 내일부터 세상이 두 쪽이 되는 거 아니냐고 해서 명대가 엄청 불쾌해했지. 그리고는 씩 웃으면서 신발의 앞코로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를 치며 덧붙였어.
“고청명이 앞으로 학교 매일 다니라고 했어.”
“근데 너 진짜 고청명이랑 사겨?”
“사귄단 말은 안했는데 고청명도 나 좋아해. 그리고 초딩도 아니고 누가 오늘부터 1일이야 하냐?”
“그럴 수도 있지...”
고등학교 때 여자친구 사귀면서 우리 오늘부터 1일이냐고 물었던 걸 떠올린 후거는 명대에게 저격당한 것 마냥 얼굴을 찌푸렸어. 그전엔 고청명이 그렇게 학교 나오라고 해도 다 무시하더니 사귀자마자 말 잘 듣는 거 봐.
“너 근데 생일선물로 차 받았다며.”
“아, 맞아. 쩔지?”
“별로. 난 작년에 받았는데.”
“아 짜증나. 진짜.. 이래서 부잣집이랑은 엮이면 안 돼.”
진위한테 자랑했을 땐 애가 입 떡 벌리면서 ‘야 진짜...? 진짜 그걸 그냥 줬다고..? 할부 아니고..?’ 이런 반응을 보여서 엄청 뿌듯했는데 명대는 ‘근데 뭐’ 이러니까 재미없어. 짜증나. 후거가 입을 댓 발 내밀고 집에 갈 거라고 앞서 걷자마자 명대가 붙잡았어. 그리고 하는 이야기가 어제 고청명이랑 무슨 이야기했는지, 고청명 방이 얼마나 깔끔하고 고청명이 얼마나 똑똑하고 전-혀 관심 없는 말을 해댔어. 아 고청명 잠옷이 파란색 줄무늬인 걸 왜 말하는데 왜!! 그거 알아서 어디다 쓰는데!
“아, 예에. 연애 처음 하신 것 같은데 너무 부럽네요.”
“처음 하는 거 아니거든?”
“아이고, 예. 두 번째시라고요.”
그게 아니면 저렇게 자랑 질을 해댈 리가 없어. 아, 귀 시끄러워 죽겠네. 후거가 이리저리 명대를 피해 다니면서 캠퍼스를 누비는데, 명대는 그런 후거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고청명과 하고 싶은 것들을 늘어놓았지. 솔직히 후거 예상으론 차에서 하기, 해변에서 하기, 거실에서 하기, 식탁에서 하기.. 뭐 이런 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저 명대새끼한테도 소녀감성이 있는지 고청명이랑 손잡고 사유지 해변을 걷고 싶다네. 아, 이런데서 빈부격차가 느껴진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곽아저씨는 사유지 해변 없어..? 아니꼬워서 명대보다 내가 먼저 할래..
명대한테 한참 시달린 후거는 절대 싫다고 했지만 명대네 차까지 얻어 탔지. 얘가 부잣집 도련님이란 건 들었는데 기사까지 딸려있는 줄은 몰랐어. 흥. 나도 뭐 아저씨가 나한테 기사 붙여준다고 했는데 내가 싫다고 한 거거든? 우리 아저씨도 부자거든?
차 안에 앉아서 이야기하다보니.. 어쩌다 다시 후거가 건화한테 차 선물을 받은 이야기를 했어. 근데 후거는 아직 면허가 없어서 건화가 제일 먼저 차 몰았다고, 내 차인데 내가 운전을 못 한다 이야기 했더니 명대가 코웃음 쳤지. 어떻게 면허도 없냐고 비웃는 거야. 와, 진짜.. 진짜 자존심 상해..
“넌 학교도 안 나왔으면서 면허는 언제 땄는데?”
“입학하기 전에 땄는데 어쩌라고.”
“아니 뭐 의외라고..”
쭈굴쭈굴해진 후거는 휴대폰 만지면서 명대의 팔을 팔꿈치로 툭툭 쳤어. 야, 그럼 주말에 우리 드라이브 갈래?
“너나 좋아해? 내가 고청명이랑 사귀니까 이제 아쉬워서 그래?”
“소설도 씨... 아 욕 나오네. 그런 거 아니고 나는 면허 없으니까 네가 내 차 운전하라고!”
“면허도 없는 게 어디서 까불어.”
건수 하나 잡았으니 이제 아주 후거를 들들 볶을 예정이야. 멀지 않은 미래가 보인 후거는 한숨을 쉬다 뒷머리를 차 시트에 길-게 대며 다시 푹푹 한숨을 꺼뜨렸어. 그래서. 갈래 말래? 가주지 뭐.
아, 나 괜히 말했나봐.
***
후거가 다른 이도 아니고 굳이 명대에게 자기 차를 운전해달라고 부탁까지 해가며 놀자고 말한 건, 실은 건화에게 선물을 사주고 싶어서였어. 후거랑 명대일로 건화가 신경도 많이 썼고, 사주기로 한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못 사주고 돈만 가지고 있는 중이라 날 잡아서 선물 사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이런 쪽에는 명대가 제일 잘 알 것 같아서 뺀질거릴 걸 알면서도 부탁한 거야. 이왕 그러는 김에 후거의 새 차도 타고 외출하고 싶었지. 아, 빨리 방학이 와야 나도 면허 따고 그럴 텐데.. 넌지시 건화한테 그냥 지금부터 학원 다니면 안 되냐고 했다가 시험공부 해야 하는데 무슨 운전 공부를 배우냐고 거절당했어. 시험공부 진짜.... 나는 자식 낳으면 안 되겠다. 곽건화가 자식 공부시킨다고 애들을 스파르타식으로 키울 게 틀림없어.
“앗.. 아, 흥.. 하지 마.. 청소하기로 했잖아.”
“어차피 월요일에 아주머니 오시는데 하지말자.”
“으으응, 싫, 어, 할 거란.. 앙, 앗, 아앙..”
평소와 달리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일어난 후거가 시리얼 한 그릇 하고 나더니 대청소를 하겠다며 밀대를 잡았어. 무슨 바람이 난 건지 방 좀 치우고 살아야겠다더니 전에 본인이 샀던 레이스 앞치마도 매고 먼지 닦는 밀대로 거실을 밀고 다니는데, 평일에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던 곽아저씨는 짧은 바지위로 동그란 엉덩이에만 시선이 고정됐어. 이리저리 움직이는 엉덩이를 내내 쳐다보고 있었지. 중간에 후거가 아저씨는 왜 가만히 있냐고 잔소리 했지만 엉덩이를 보느라 들리지 않았어.
후거가 감기에 걸려 생이별을 해야 했던 과거이력 때문에, 후거와 건화의 스윗 홈은 이제 무조건 에어컨이 27도로 고정되어있었어. 후거가 “아, 더워. 너무 덥다. 더워서 쓰러질 것 같다. 리모컨이 어디 있을까?” 하고 건화 앞에서 눈을 크게 떠 보이며 아양을 떨어도 건화는 절대로 리모컨을 내어주지 않았지. 혼자 있으면 또 에어컨 최하로 내리고 이불 둘둘 감고 기침해댈 게 틀림없거든.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항의의 의미로, 덥다고 밑에는 팬티만 입고 생활했는데 역효과였어. 곽건화가 볼 때마다 덮쳐댔지. “이건 나보라고 팬티만 입고 다니는 거야?” 아니, 어, 맞긴 한데... 어.. 그런 의미는 아니고..
매일같이 덮쳐지는 바람에 아래가 헐 것 같았던 후거는 결국 계획을 변경했어. 옷은 제대로 입고 다니자. 그래서 처음에는 무릎까지 오는 바지를 입었다가.. 후거가 은근히 더위를 좀 타는 체질인지 바지는 계속 짧아졌어. 건화에겐 좋은 일이었지.
어쨌든. 짧은 반바지 입고 눈앞에서 살랑살랑 대는데, 전적으로 곽건화 생각이었음.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 치울 것도 하나 없는데 더럽다고 밀대로 바닥을 쭉쭉 미는 후거의 뒤로 다가간 건화가 대뜸 후거의 바지 속으로 손을 넣었어. 당연히 후거는 싫다고 어제 했는데 왜 또 하냐고 찡얼대다가, 쾌락에 약한 몸이라 금방 함락 됐지. 먼지투성이가 된 밀대가 손에서 떨어지고, 바지와 팬티도 무릎 아래로 내려갔어. 반질반질한 투명 매니큐어가 발린 예쁜 손이 벽을 짚었어. 어제 같은 과 동기 여자애가 후거 손이 너무 예쁘다고 매니큐어 발라보는 게 소원이라고 해서... 거절이 힘든 후거가 눈 딱 감고 손을 내어줬어. 처음에는 핑크색을 바르려고 하길래 절대 싫다고 우겨서, 겨우 투명으로 발랐지. 바르고 나서 수업시간에 계속 손 쳐다보면서 이상해. 이상해. 하다가 집에 가서 지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깜박하고 있었어. 건화가 퇴근하고 나서 같이 저녁 식사하다가 후거 손톱이 반들거리는 걸 알아챘지. 그리고 덮쳐진 건 뭐 굳이 이야기 안 해도..
“아흥, 응, 으읏, 아.. 흐, 아, 아저씨, 잠깐..! 아, 아으, 으으응..”
후거의 안으로 손가락을 늘리던 건화는 발기된 제 성기를 미끈한 엉덩이 위에 부비면서 미간을 찌푸렸어. 콘돔.. 콘돔을 어디 뒀더라. 거실에 있는 건 어제 다 썼는데. 침실까지 가기엔 건화의 이성은 아주 실낱같이 남아있었고, 후거의 목소리는 달콤하게 그의 귓바퀴를 에워쌌어.
“후거.”
“응? 흥, 흐응...”
“밖에다 할 게.”
“으응..?”
건화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 후거는 나른 한 눈을 끔뻑였어. 하아, 하아.. 빠르게 숨을 몰아쉬고, 목덜미에 건화의 입술이 닿더니 그가 곧 후거의 한쪽 다리를 잡아 올렸지. 아으.. 다리 하나로 몸을 지탱하고 있으려니 더 힘들었어.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벽에 손바닥을 밀착시키고 엉덩이를 벌리며 들어오는 감각에 콧등을 좁혔어. 어젯밤에도 내내 벌어져있던 덕에 성기가 수월하게 진입했지. 가장 두꺼운 부분을 지나 쑥 밀고 오는 살덩이에 아랫배가 진동하는 것 같아. 건화는 후거가 익숙해지기도 전에 움직이기 시작했어. 후거의 허리를 안은 채로 위로 쿵쿵 쳐올렸지.
“아앙.. 앗, 아흐으, 앗, 아, 아으..!”
“오늘 왜 이렇, 게 일찍, 일어났어.”
“아흐, 응, 나, 이따 명, 대랑 약속, 앗, 아흐응, 거기, 더, 더...”
하아아앙! 그가 후거가 말한 그 부분을 찔러주자, 후거가 곧 자지러지게 울며 허리를 퉁겼어. 청소에 대한 생각도 싹- 사라지고 본능만 남아 아래에 힘을 주며 뱃속에 든 성기를 죄였지. 오랜만에 콘돔을 안 해서 그런가 기분도 다르고. 아으, 아으으.. 고개를 마구 내저으며 신음 할 때, 건화가 후거의 다리를 내려주며 벽으로 몰아붙였어. 후거는 두 손을 머리위로 모은 채 벽을 짚고 섰지. 날씬하게 곡선을 이루는 허리와, 그 아래 통통하게 살집이 오른 엉덩이는 온통 애액으로 젖어 번들거렸어. 기껏 닦아놨던 바닥도 후거의 뒷구멍에서 줄줄 흐르는 액체로 더러워졌지. 바닥에 뚝뚝 흐르는 소리와 깊은 곳으로 쑤셔질 때 마다 찰박대는 것에 이성이 녹아내리는 것 같아. 후거는 뿌옇게 흐려진 눈을 들어 거실 벽시계를 봤어. 명대랑.. 11시에 약속했는데 벌써 열시가 다 되어가잖아.. 하아.. 힘이 빠지는 몸을 다시 다잡은 후거는 안에 든 성기를 꽈악 아물며 건화의 사정을 재촉했지. 세게 조이는 아랫구멍에 입매를 굳게 다문 건화는 이를 악물고 끝까지 빼내곤 좁아진 구멍을 사정없이 벌리며 단번에 쑤셔 박았어.
“아! 흐아아...!”
전립선을 세게 쿵 찧으며 들어온 것은 배려 없이 그 부근을 비벼댔지. 결국 후거가 잔뜩 몸을 뒤틀고 신음하더니 먼저 사정해버렸어. 배를 툭툭 치며 서있던 것이 하얀 액을 뿜어냈고 벽을 짚고 선 손도 애처롭게 바들바들 떨렸지. 더는 후거에게 체력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판단한 건화도 후거의 몸을 붙들고 몇 번 더 추삽질을 하다 눈가를 찌푸리며 성기를 끄집어냈어. 그리고 번들거리는 엉덩이골 윗부분에 귀두 끝을 비비다 정액을 쏟아냈지. 그냥 콘돔 하는 게 낫지. 중간에 빼는 게 더 힘들어.
“흐으, 흐아아.. 다, 다음부턴 서서 안 할래.. 너무 힘들어...”
지금도 건화가 잡고 있는 손 빼면 바로 쓰러질 것 같아. 팔에 이마를 대고 흐느낀 후거가 중얼거렸어. 그 엄살에 희미하게 웃은 건화는 비틀대는 후거를 소파 위에 눕혀두고, 물티슈를 가져와서 젖은 엉덩이를 닦으며 말했지.
“피곤한데 그냥 집에 있어.”
“누가 피곤하게 만들었는데...”
청소는 시작도 제대로 안 했는데 벌써 기운 다 빠졌어. 쿠션을 끌어안은 채로 멍하게 천장을 올려다보는데, 물티슈를 쥔 손이 허벅지 안쪽에 닿아서 다리를 벌려줬어. 저녁에도 그렇고 아침에도 시달린 터라 예쁘게 다물어진 구멍이 조금 부어있었지. 허벅지를 닦아 낸 후 새 물티슈를 뽑아낸 건화가 엉덩이 안 쪽의 구멍에 손을 대자 후거가 미간을 마구 좁히며 건화의 손을 쳐 내.
“짐승.”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 하려던 게 아니라 그냥 닦아주려는 거였는데.. 억울함이 하늘을 찌르지만 솔직히 부어오른 구멍보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은 건 또 아니라서, 건화는 제대로 된 해명도 못하고 나이어린 부인의 징그럽다는 눈빛을 감내해야했어.
“어차피 아저씨도 오늘 약속 있으면서.”
“나 약속 있어서 후거도 약속 잡은 거야?”
“그런 거 아닌데?”
“나도 약속 취소할까?”
“됐어. 그러다 친구들한테 왕따 당해.”
흥, 하고 콧방귀를 뀐 후거가 건화의 코끝을 손가락으로 콕- 찍었지. 그러자 자동으로 건화의 입 꼬리가 위로 솟았어. 자신의 광대뼈를 조절하지도 못하고, 손에 든 물티슈를 떨어뜨린 그가 후거의 뺨을 붙잡고 바로 키스했지. “아, 하지 마.” 앙탈에도 굴하지 않고 도톰한 아랫입술을 이로 잘근잘근 깨물자 결국 입술이 벌어졌어. 그 좁은 틈 사이로 혀를 밀어 넣고, 차가워진 손으로 후거의 미끈한 아랫배를 조금 부드럽게 매만지다가 티셔츠 속으로 손을 미끄러뜨렸어.
“흐응...”
귀여운 콧소리를 들으며 후거의 입술만큼 도톰한 가슴께를 매만지는데, 기분 탓인지 몰라도 평소보다 더 큰 거 같은데. 손바닥에 부드럽게 감기는 감촉에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린 건화는, 뭐 좋은 게 좋은 거란 생각으로 말캉한 후거의 젖가슴을 천천히 문질렀어.
***
다행히 명대가 삼십분이나 늦게 와서 지각은 면했어. 분명 건화한테 약속 있다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붙들고 놔주질 않잖아. 자긴 약속 늦게 있어서 태평하지. 치... 11시 30분을 넘어서 후거네 집에 도착한 명대는 허겁지겁 나오는 후거를 보며 묘한 표정을 했어.
왜 늦었냐?
네가 할 말은 아니잖아?
집에서 네 남편이랑 뭐 했어.
아, 닥쳐... 눈치만 빨라가지고..
집에서 뭘 했는지 들키긴 했지만 일단 선물 사러 가는 게 중요하니까 명대랑 주차장으로 내려갔어. 짠! 후거의 하얀색 자동차를 보여주니 가만히 서 있던 명대가 후거의 눈치를 보다 와, 좋다. 하고 짧게 감탄했지. 근데 듣는 사람의 기분이 영 더러워. 진위랑 원홍한텐 사진 보여주니까 개쩐다면서 난리였는데. 진짜 명대 이자식이랑 난 너무 안 맞아.
마음 같아선 직접 운전하고 싶었지만 아직 면허는커녕 시동 거는 법조차 모르는 후거는 그냥 조수석에 앉는 걸로 만족했어. 근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명대한테 운전을 맡기는 게 너무 겁이 나... 그 전 까진 별 생각 없었는데 조수석에 앉고 보니 쟤 죽으면 내 차도 죽고 나도 죽는다는 게 갑자기 실감이 되는 거야. 입술을 꾹 다문 후거는 눈을 옆으로 흘기며 명대가 하는 모양새를 지켜봤어. 막 어색해하거나 버벅 거리는 건 없는데... 그래도 걱정이 되어 물었지.
“너 마지막으로 언제 운전했어?”
“운전면허 시험 보는 날.”
“뭐?!!!!!!!”
전혀 동요 없이 무표정으로 나온 명대의 말에 화들짝 놀란 후거가 안전벨트를 다시 확인 해. 나 멨지? 아, 안전벨트 매는 거 하나 더 없나? 세 개는 매야 살아남을 수... 정작 버벅 대는 건 명대가 아니라 후거였어. 야, 야 우리 그냥 걸어갈까? 응? 너도 고청명이랑 사귄지 얼마 안 됐는데 죽는 건 너무 억울..
“농담이야. 농담. 멍청아.”
“닥쳐. 농담 아니잖아.”
“아니거든. 두 달? 두 달 반전에 운전했어.”
“으아,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 우리 그냥 택시타고 가자.”
“사내새끼가 겁이 그렇게 많아서. 야. 간다.”
차에서 내리기 위해 안전벨트를 풀려던 후거는 갑자기 차가 출발해 비명을 내질렀어. 으아악 야!!!
저승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간 기분이었지.
하지만 그렇게 겁먹은 게 무색할 정도로, 도로로 나온 명대는 어울리지 않게 안전 운전 철칙을 지켰어. 너무 교과서적으로 하는 건 둘 째 치고...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생명줄 마냥 꽉 붙잡고 있었던 후거는 어느새 벨트에서 손을 빼고 긴장도 풀어졌지. 물끄러미 앞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창밖을 내다봤어. 모자를 쓰고 조깅하는 아저씨가 보였지. 가볍게 뛰는 아저씨를 계속 쳐다보다가 휴대폰에 게임 알림을 확인하고 다시 창문을 보는데, 여전히 그 아저씨가 있어. 후거는 창가 위로 아저씨의 어깨부근을 콕 찌르면서 말해.
“걷는 사람이 더 빨라.”
“조용히 해.”
“저기 앞에 가는 아저씨 아까 우리 옆에 지나가던 아저씨 아냐?”
“아, 닥쳐. 오랜만에 해서 가물가물 하니까.”
“죽을 일은 없어서 좋긴 한데..”
뒤에서 차에 치면 이것도 죽는 거 직방 일까? 명대 새끼 분명 과속하고 급정거하고 속도 안 줄이고 코너 꺾고.. 도로 위에서 혼자 F1찍을까봐 겁났는데 현실은 뛰뛰빵빵 속도라니... 자동차와 나란히 뛰는 아저씨가 곧 속도를 높이더니 후거의 차를 앞질러나갔어. 멍하게 쳐다보던 후거의 뺨이 부풀었지. 뭔가 자존심 상해. 내 차 엄청 좋은데.
택시를 타고 출발했으면 이미 백화점에 도착 했을 텐데. 절반은 왔을까? 여전히 20km 속도를 유지중인 후거의 차는 아주 부드럽게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 섰어. 안전선도 딱 맞추고... 속도만 사람이 걷는 것 보다 빠르면 좋을 텐데 말이야.
운전에 집중을 제대로 한 명대는 후거의 잔소리도 무시하고 핸들만 꽉 잡았지. 쟤 보니까 별로 운전 안 배우고 싶어. 갑자기 운전에 대한 열의가 떨어져 휴대폰으로 건화한테 시답잖은 메시지나 보냈어.
[아저씨 뭐해?]
지금 쯤 외출준비 한다고 씻으려나?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답장이 금방 왔지.
[후거 생각 중.]
답장보고 소름 돋아서 휴대폰 다시 집어넣고 창틀에 턱 괴고 바깥 풍경을 바라봤지. 와.. 진짜 바깥 구경하는 데엔 최고다.. 하나도 안 놓치고 다 볼 수 있네.. 느려서.. 요즘에 애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 있는데 그거랑 속도 싸움 해보고 싶다....
“느려...”
“....”
“너무 느려... 답답해...”
“닥쳐.”
“걷는 게 더 빨라. 그냥 걸어가자.”
“이게 진짜. 야. 나도 속도 높일 수 있거든?”
“쫄보.”
“너한테 쫄보라는 소리 들으니까 진짜 인생에서 최고로 화난다.”
정말 화가 나긴 나는지, 명대가 이마를 잔뜩 찌푸리며 대꾸했어. 하나도 안 무섭다. 뭐. 입 쭉 내밀고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멍이나 때렸지. 하지만 횡단보도의 사람들이 다 지나가고 신호등 색깔이 바뀌자, 출발한 명대가 정말로 속도를 올렸어. 남자답게 스피드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봐. 어... 30km. 장난 하냐.
“쫄보야. 쫄보.”
후거가 자꾸 놀리니까 명대도 열이 올라 더 속도를 내던 참이었어. “어, 저기 고청명.” 창밖만 내내 쳐다보고 있던 후거가 인도에서 걷고 있는 청명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말했는데, 그 때 명대의 집중력이 흐트러졌어. 후거가 손짓하는 방향을 쳐다보느라 방향을 잘못 잡았지. 한참 속도를 내고 있던 자동차는 차도가 아니라 인도로 향했어. 그리고 곧바로 가로수에 쾅- 들이박았지.
“으악!”
잔인한 뒷일이 예상되는 일이나, 원체 뛰는 사람의 속도였던 데다 명대가 브레이크도 밟은 터라 가로수도 끄떡없었고 후거와 명대의 목숨에도 전혀 지장이 없었어. 대신 후거의 자동차가 쪼끔 아프게 됐지.
“으아아, 어떡해.”
차가 멈추자마자 뛰어 내린 후거는 앞 범퍼가 조금 찌그러진 걸 보며 울상을 했어. 어떡해. 차 망가졌어..
“망가지긴. 그냥 좀 긁혔네.”
“수리비 내놔!”
“돈 하나도 안 가져왔거든. 네가 밥 사준다며.”
하얀색 자동차 도색도 다 긁힌 걸 보며 후거는 두 손으로 뺨을 감싼 채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지. 한편, 학생 둘이서 충격적이고 잔인한 교통사고를 겪은 걸 목격한 경제과 교수 고청명은 못 볼 걸 봤다는 얼굴로 다가왔지. 너희 뭐해?
“교수님 명대가 제 차 망가뜨렸어요...”
“완전 안전 운전했어요. 이십킬로. 교수님 말대로요.”
“...지금 가로수에 들이박은 거야?”
차 찌그러뜨린 주제에 당당한 명대는 슬금슬금 후거 옆에서 청명이 옆 자리로 옮기며 꼭 칭찬해달라는 냥 말했어. 거기에 넘어가지 않은 청명은 울 것 같은 얼굴로 차를 보는 후거를 보다가, 가로수 앞에 앞이 조금 들어간 차를 번갈아 봤지. 어제 명대가 후거 차타고 백화점 갈 거라고 해서, 운전 조심하고 속도 최대한 낮추라고 말 했는데...
“어떡해요! 나 차 망가진 거 알면 아저씨가 나 절대로 운전 못하게 할 거야!”
고작 주먹만 한 크기 정도로 찌그러진 거에 눈물샘이 퐁퐁 흐를 것 같아. 쭈그려 앉은 후거는 움푹 들어간 부근을 매만지며 입술을 잔뜩 떨었어. 어떡하지. 어떡하지. 카드 결제하면 아저씨한테 문자가서 카센터인거 들킬 텐데. 어떡하지...
“겁쟁이. 누가 누구보고 쫄보래?”
“수리비 내놔!”
“..명대 네가 사고 낸 거야?”
“사고라니. 그냥 가로수가 너무 간지러워보여서 좀 긁어준 건데요.”
“하아...”
얼굴 두께 두꺼운 걸로는 세계 1위 하고도 남을 것 같은 행태였지. 청명은 자기가 겪은 일도 아닌데 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아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어. 그 사이 후거는 진짜로 울음을 터뜨렸지. 자동차야 미안해.. 주인님이 이상한 친구를 사겼어... 너무 미안해...
“아무도 안 다쳤으면 됐잖아요. 봐 봐요. 나무도 엄청 멀쩡한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무도 안 다치긴 뭐가 안 다쳐! 내 차 다쳤잖아!”
“괜찮아. 병원 데려다주면 금방 나아.”
“병원비도 안 줄 거면서!”
“돈 많은 네 남편 어따 쓰냐?”
철면피도 저런 철면피가 없지. 후거는 “몰라!!” 하고 빼엑 소리를 지르며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어. 그나저나 우는 걸 보니 명대도 좀 미안해져서 후거의 등을 토닥이며 뻔뻔한 얼굴로 후거를 위로 했어.
“괜찮아. 교수님이 결제해줄 거야.”
그 말에 후거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들어 청명을 올려다보고, 마침 이 근처에 볼일이 있어 나왔던 청명은 졸지에 제자 자동차 수리비를 내야할 위기에 처했어. 수리비 정도야 당연히 내 줄 수 있긴 한데 본인의 의지가 아니어서 조금 당황했지. 하지만 울먹이는 후거의 얼굴을 보니 안 된다는 말도 안 나오잖아.
“그쵸?”
“....그래. 내가 내줄게.”
“것 봐. 멋있지?”
“...교수님이 아까워.”
“너 오늘따라 진짜 맞을 소리 많이 한다.”
명대가 웃는 낯으로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어. 콧방귀를 뀐 후거는 찌그러진 부분을 반복적으로 매만지며 우울하게 중얼거려. 얼마나 많이 나올까 수리비...
“그깟 거 나와 봤자 얼마 안 해.”
“그래도 비싸면...”
“괜찮아. 괜찮아. 교수님이 내주시잖아.”
꼭 명대는 청명에게 자기 돈을 맡겨놓은 사람 같아. 하지만 명대가 뻔뻔하게 구는 일이 한 둘이 아니니, 명대의 행동에 굳이 큰 의미를 안 두는 게 나아. 휴대폰을 꺼내 든 청명이 자주 이용하는 곳에 전화를 걸었고, 마음 정리가 됐는지 후거가 쪼그린 몸을 펴고 일어났어. 아까는 우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명대 이 새끼.. 고청명 교수님 왔다고 그 옆에 딱 달라붙어있는 거 봐. 눈꼴 시려서 코끝을 찡그린 채로 둘을 쳐다봤지. 교수님은 전화하는 중이라고 해도 명대가 옆에 딱 달라붙어있는데 떨어지라는 말을 안 해. 예전 같았으면 분명 비키라고 했을 텐데. 진짜 둘이 사귀나봐. 와... 교수님이 아깝다. 진짜...
“너 무슨 생각했어.”
“별로...”
“너 속으로 나 욕했지.”
“아니. 아닌데? 아닌데?”
속이 들통 난 후거는 눈을 크게 뜨며 아니라고 시침을 뗐어. 저 자식 눈치만 빨라가지고.. 헛기침을 좀 하다가 커플 사이에 끼여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해. 교수님도 전화 끝내고 나선 아무 말도 없고. 명대도 말도 없고. 후거도 가만히 있으니까 사람 있는 도로변임에도 불구하고 썰렁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아. 후거는 큰 눈을 깜빡이다가 괜히 아무 연락도 없는 휴대폰을 들어 만지작거렸지.
“근데 교수님은 왜 이 근처에 있어요?”
“잠깐 볼 일 있어서.”
“안 가 봐도 돼요?”
“기사분 오시면 가야지. 빨리 가야하는 일 아니라 괜찮아.”
우와. 둘이 안 싸우고 멀쩡한 대화한다. 근데 대화가 너무 멀쩡해서 별로 사귀는 사이 같지도 않아.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서 아무거나 터치하면서도 귀는 두 사람이 하는 말로 쫑긋 섰어. 아저씨랑 나랑은 무슨 대화하더라?
“우리 형한테 전화 안 왔어요?”
“...왔어.”
“..형이 뭐래요? 이상한 소리 했죠?”
“이상한 소리 아니었어. 형님이면 그런 말 할 수 있지.”
“형이 무슨 소리 했는데요?”
“형님한테 물어 봐.”
명대는 미묘한 표정을 하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어. 무슨 말 했는지 안 봐도 뻔해요. 청명은 아무 대답하지 않았고, 다시 조용해졌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그 사이에서 후거 혼자만 눈치 보이고, 어색해져서 주변을 둘러보다 근처에 편의점에 보여 잠깐 편의점에 들르겠다고 하고 가버렸지. 살 거 없지만 그냥 편의점 쭉 둘러보면서 시간이나 때울래. 후거가 팔랑팔랑 편의점으로 도망가자 명대는 쟤가 왜 갑자기 뭐 마려운 것 마냥 안절부절못하다 편의점에 가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아 픽 웃으며 가로수에 등을 기대며 섰지. 청명은 휴대폰을 쥔 채로 명대 너머 차도로 시선을 두고 있었는데, 이따금씩 그의 눈동자가 힐끔대며 명대 쪽을 보다 되돌아가는 게 보여서, 발끝으로 가로수 아래 흙바닥을 조금 긁었어.
청명에게 고백하고 나서, 일주일이 흘렀어. 후거에겐 사귀는 거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명대가 생각하기에도 사귄다고 하기엔 좀 미묘한 관계였지. 예전엔 명대의 전화도 잘 받지 않던 청명이, 명대가 전화하면 꼬박꼬박 받고 문자에 답장도 해줬어. 명대가 보고 싶다고 하면 난처한 얼굴을 하긴 해도 그 날 스케줄이 어떻게 되는지 대답해주고. 그래도 둘 사이에 스킨십은 거의 전무하다고 봐야했지. 손을 잡은 적도 없고, 심지어 그 후로 껴안아 본 적도 없어. 하지만 명대는 고청명과 사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어.
손마디가 간질간질 한 것 같아 주먹을 쥐었다 폈어. 명대가 잠깐 고개를 숙인 사이 청명의 시선이 온전히 명대에게 닿았지. 아무리 속도가 낮았다고 한들 어디 다치진 않을까 걱정이 됐어. 훑어보다 명대의 고개가 들리자마자 시선을 돌렸는데, 그 때 명대가 말해.
“나한테 뽀뽀하고 싶죠?”
“...뭐?”
근본 없는 말에 일부러 먼 곳을 보고 있던 청명이 명대에게로 고개를 돌렸어. 내가 잘못 들었나?
“뽀뽀할 수 있는 기회 줄게요.”
“....”
잘못 들은 건 아닌 거 같은데, 내가 왜 저 말을 듣는 건지 의아해. 청명이 입을 벌리며 한쪽 눈가를 일그러뜨린 채로 다시 되물어. 뭐?
“하루, 이틀 오는 기회 아니에요. 해도 된다고 할 때 해요.”
“하..”
어이가 없어서 웃었어. 그가 어깨까지 떨며 웃자, 가로수에 등을 기대고 있던 명대도 눈 꼬리를 접으며 곱게 웃었지. 눈이 꼭 반달처럼 휘어서, 청명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명대의 눈 끝을 엄지로 매만졌어. 그러자 명대의 두 눈이 더 가늘게 휘고, 청명의 고개도 가까이 다가왔어. 그의 얼굴이 코앞으로 좁혀지자,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벌렸지. 천천히 닿는 입술은 부드럽기보단 까슬했지만, 감촉보다는 자기 입술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 같아 부끄러웠어. 떨기 싫은데... 더불어 쿵쾅쿵쾅 뛰는 제 심장소리도 창피해. 고청명이랑 한두 번 키스해보는 거 아닌데. 왜 이렇게 심장이 뛰냐.. 마음 같아서는 시끄럽게 뛰어대는 심장 좀 부여잡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대신 주먹을 세게 쥐고 어깨에 바짝 힘을 줘. 청명의 입술과 닿은 명대의 입술도, 그리고 꼭 감긴 눈꺼풀도 애처롭게 떨렸지. 명대가 기댄 가로수도 초록빛에서 점점 갈색으로 변해가고, 온 몸을 태울 것만 같던 여름도 거의 지나가고 있었어.
“커퀴.”
편의점을 둘러본다던 후거는 유리창 앞에 마련된 테이블에 턱을 괴고 키스하는 둘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어. 내가 없어지기만을 바랬겠네. 흥. 둘이 안 사귈 땐 돌아가면서 날 괴롭히더니.. 이젠 저렇게 날 괴롭히다니. 이참에 사진이나 찍어둬서 두 사람 협박 할 때 쓰면 좋을 것 같긴 한데... 물끄러미 둘을 쳐다보다가, 그냥 어깨를 으쓱이며 캔 음료가 진열된 곳으로 갔지. 그냥 음료수나 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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